'뼈속까지 독한 밴드' RATM에 대한 24가지 사실

2014-05-2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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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첫 곡 'Bombtrack']1. 밴드 결성을 주도한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1집 첫 곡 'Bombtrack']

1. 밴드 결성을 주도한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의 아버지는 미국 주재 케냐 대사였다. 백인 어머니와 결혼해 모렐로를 낳았으나,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케냐로 돌아가버렸다. (오바마와 사뭇 비슷) 모렐로는 어머니가 홀로 키웠다.

[metalsucks.net]

2. 모렐로는 고등학교 때 성적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뛰어난 학생이었다.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고, 사회학으로 졸업했다.

3. 모렐로는 대학 졸업 후 LA에 갔다. 먹고 살기가 궁해서 남자 스트립 댄서로 일하기도 했다.

[데일리메일]

4.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보좌관으로 일했으나 얼마 못 가 그만뒀다. 그만 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내가 하는 일의 80%는 부자한테 전화해서 돈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정치판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깨달았다. 두번째 이유는 사무실에서 한 여성의 전화를 받은 일이었다. 그 여성은 자기 동네에 멕시코인들이 이사온 것에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말했다. '아줌마, 졸라 인종차별주의자시네요'. 그 아줌마는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다. 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 때문에 1주일간 사무실에서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아, 인종차별주의자를 인종차별주의자라 부르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 일은 내게 맞지 않았다"

[ratsound]

5. 래퍼인 잭 드라 로차(Zack De La Rocha)의 아버지는 멕시코계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독일-아일랜드계였다. 1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 올리비아에 의해 키워졌다. 올리비아는 로차를 홀로 키우며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 어바인)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땄다.

[metalsucks.net]

6. 로차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10대 시절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밴드에 몸을 담았고, 이 밴드가 해체한 후에는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프리스타일링(Freestyling)'을 했다.

[위키피디아]

7. 베이시스트인 팀 커머퍼드(Tim Commerford)와 로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같이 연주를 한 경험도 있다. 이 인연으로 RATM 결성 때, 로차가 커머퍼드를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영입했다.

[pastemagazine.com]

8. 모렐로는 상원의원실을 때려친 후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처음엔 '락 업(Lock Up)'이라는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시작했으나, 이 밴드는 해체됐다. 그러다가 모렐로는 LA의 한 클럽에서 로차가 래핑을 하는 것을 봤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로차에게 접근한 모렐로는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한다.

[guerrillaguitar.blogspot.com]

9. 모렐로는 전에 있었던 밴드 '락 업'에서 드럼 오디션을 봤던 브래드 윌크(Brad Wilk)를 드러머로 영입했다. 로차가 커머퍼드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해 4인조 밴드가 완성됐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라는 밴드 이름은 로차가 전에 썼던 곡 제목에서 따왔다.

[zimbio.com]

10. RATM의 첫 외부 공연은 커머퍼드 친구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였다.

[물론 이건 당시 파티 현장이 아니고... 유명했던 LA 그랜드 올림픽 오디토리엄 공연]

11. RATM은 첫 데모곡 12개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다. 이 중 3곡은 첫 앨범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무튼 데모 테이프를 레코드사에 돌렸고, 여러 군데에서 흥미를 보였다. 결국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계약을 체결한다.

[에픽 레코드 뉴욕사무실 /텀블러]

12. 데뷔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은 빅히트를 기록하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랩 메틀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커버 사진은 1963년 베트남승려가 당시 베트남 정부에 항의하며 분신 자살하는 모습을 담은 유명한 사진이다.

[RATM 1집 앨범 커버]

13. 데뷔한 1992년부터 해체된 2000년까지 신곡이 들어간 공식 앨범은 딱 세 개다. 'Rage Against The Machine(1992)', 'Evil Empire(1996)', 'The Battle Of Los Angeles(1999)'

[2집 앨범 커버]

[3집 앨범 커버]

14. 1999년 영화 '매트릭스'에 RATM의 곡 'Wake Up'이 실렸다. 2003년 '매트릭스 2'에는 'Calm Like A Bomb'이 나온다.

[Wake Up]

[Calm Like A Bomb]

15. 2000년 로차는 그룹 탈퇴를 선언했다. "그룹의 의사 결정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하며. 로차는 솔로로 전향했고, 남은 멤버들은 크리스 코넬을 영입해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라는 밴드로 계속 활동했다.

[listal.com]

16. '오디오슬레이브'는 2007년까지 세 앨범을 냈고, 메이저 밴드로 꽤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코넬이 탈퇴를 선언하며 해체했다.

[Show How To Live]

17. 극좌파 무정부주의 성향을 띤 RATM과 달리, '오디오슬레이브'는 비정치적인 노래를 주로 불렀다.

[오디오슬레이브의 히트곡 'Like A Stone']

18. 잭 드라 로차와 남은 세 명 멤버는 2007년 재결합한다. 7년 만에 재결합 후 첫 공연은 '2007년 코아첼라 락페'였다. 그러나 이후 새 앨범은 내지 않은 채, 주로 함께 순회 공연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 런던 콘서트 풀버전]

19. 2009년 크리스마스 시즌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1992년곡인 'Killing In The Name'이 오르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이는 한 부부가 시작한 페이스북 캠페인의 결과였다. 영국에선 2005년부터 계속 인기 오디션 TV 프로인 'X Factor' 우승곡이 1위에 올랐고, 부부는 이러한 TV 상업주의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 RATM 곡을 듣자라는 운동을 벌인 것이다. 영국 젊은 층 사이에 센세이션한 반응을 낳았다.

20. 한국에선 1996년 H.O.T.의 '열맞춰'가 RATM의 'Killing In The Name'을 표절했다는 시비가 일었다. 비슷한 부분이 실제 있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

21. RATM는 '역사상 가장 정치적 밴드'로 불릴만큼, 비판적인 가사 못지 않은 정치적 액티비즘으로 유명하다. 1996년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 쇼에선 앰프에 미국 국기를 거꾸로 걸고 연주하려 하다가 제지당하고 NBC 방송국에서 떠날 것을 요구받았다.

22. 2000년 1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노래인 'Sleep Now In The Fire'를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 형식으로 불렀다. 물론 쫓겨났다. 이때 광경이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졌는데, 감독은 마이클 무어였다.

23. 2000년 민주당 전당대회 공연 때는 경찰이 강제력을 동원해 군중을 해산하는 소동이 있었다. 이때 광경은 아래와 같다.

24. 한국엔 딱 한 번 내한공연을 가졌다. 현대카드가 개입하기 훨씬 전인 2000년. 지금까지도 당시 공연 참석자들의 무용담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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