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청년단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 사실
2014-10-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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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캡처] 1. 서북청년단은 누구?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된
1. 서북청년단은 누구?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된 우익청년운동단체다. 이들은 공산치하의 학정을 못 이겨 이북에서 월남한 청년들로 과거의 아픈 경험 탓에 공산주의자라 판단되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승만과 미 군정은 이 점을 이용해 각 지방마다 서북청년단을 파견해 그 지역의 좌익 세력들을 색출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생계 지원 없이 파견된 까닭에 서북청년단은 태극기나 이승만 사진을 강매하는 등 갈취와 약탈을 무수히 일삼았다.
2. 제주 4.3 사건 때 무차별 살상 자행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 있던 남로당 당원들 350명이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을 막기 위해 제주도 경찰지서 12곳과 서북청년회 숙소 등을 급습하면서 시작됐다. 미군은 이 사태를 경찰과 우익단체들을 이용해 해결하려 했고 1947년 경찰의 오인사격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제주도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문제를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해 4개월 동안 제주도 중간산 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을 진행했다.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없는 경우에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이른바 '대살(代殺)'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중간산 마을의 95%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좌익과 무관한 민간인 약 3만명이 희생됐다.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서북청년단이 한 일이 자세히 서술돼 있는데 한 증언자는 "서북청년단 출신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라고 말했다.
3. '김구 암살'한 안두희는 서북청년단 출신

1959년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서북청년단 출신이다. 그는 평안북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의 아들이었으나 소련군이 재산을 몰수하자 월남해 서북청년단에 가입했다. 안두희는 서북청년단 종로지부 총무로 활동하면서 경찰과 군 수뇌부의 지원을 받았다. 이후 그는 이승만의 사조직인 '88구락부'의 정예요원으로 선발돼 김구를 암살했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김구 선생을 반역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의 살해행동은 애국적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4. '백골부대' 이름은 서북청년단과 관련
백골부대는 서울 수복 이후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전설적인 부대다. '백골부대'라는 이름은 서북청년단원들이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을 되찾겠다'며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은 것에서 비롯됐다. 백골 부대가 최초로 북진한 날은 '국군의 위용과 발전'을 기리기 위해 '국군의 날'(10월 1일)로 제정됐다.
5.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는 어떤 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는 배성관 씨가 지난달 중순 '일간베스트'에 글을 올려 "미친 개(종북좌익)를 때려잡자"고 제안한 것에서 비롯됐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회원 5명은 지난달 28일 서울 광장의 노란 리본을 철거하려다가 경찰과 서울시 직원들에게 저지당했다.
또 재건준비위원장 배씨는 지난달 30일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했다. 안두희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글을 올려 사단법인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