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퍼웨이브’에 대한 6가지
2017-01-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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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베이퍼 웨이브’(Vapor Wave)라는 장르가 등장해 시선을 끌고 있다.베이퍼
한국에서 ‘베이퍼 웨이브’(Vapor Wave)라는 장르가 등장해 시선을 끌고 있다.
베이퍼 웨이브는 아직 한국에서 낯설다. 한국에서 베이퍼 웨이브라는 단어는 힙합· 전자음악 등을 다루는 일부 음악 커뮤니티에서만 사용된다. 베이퍼 웨이브는 201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유행한 ‘음악’이자 ‘스타일’로 알려졌다. 베이퍼 웨이브는 SNS ‘텀블러’(Tumblr)와 외국 커뮤니티 사이트 ‘포챈’(4Chan)을 중심으로 퍼졌다.
외국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케이팝(K-POP) 뮤직비디오를 두고 베이퍼 웨이브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케이팝(K-POP) 뮤직비디오에 대한 칼럼을 쓰는 카에라 마이어스(Kaela Myers)는 아이유 ‘스물셋’을 분석했다. (☞바로가기) 그는 스물셋 뮤직비디오 끝 부분에서 형광 나무와 여러 명의 아이유가 나오는 장면을 지적한다. 그는 이 장면을 두고 ‘베이퍼 웨이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지난달 18일 유튜브에 올라온 지코(Zico) ‘말해 Yes or No’ 뮤직비디오에는 ‘80년대풍이다’, ‘베이퍼 웨이브’라는 댓글이 달려있다.
이하 유튜브, 1theK (특정 구간만 재생됩니다)
베이퍼 웨이브는 모호한 장르다. 한국에서 베이퍼 웨이브가 분명히 유행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프로듀서 무드 슐라(Mood Schula)에게 베이퍼 웨이브에 관해서 물어봤다.

무드 슐라는 지난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해 싱글 앨범 'DNA Science'를 냈다. 그는 베이퍼 웨이브를 한국에서 제일 처음 소개한 아티스트 중 하나다. 무드슐라와 함께 ‘베이퍼 웨이브’에 대한 6가지를 정리해봤다.
1. 쇼핑몰에 흘러나올 법한 허무한 음악
음악 장르로서 베이퍼 웨이브는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진 않는다. 음악 웹진 피카소는 ‘베이퍼 웨이브’에 대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유행한 음악을 주로 샘플링한다고 밝히고 있다. 샘플링은 원래 있는 곡에서 일부 음원을 잘라내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 매체 시카고 리더는 2013년 ‘베이퍼 웨이브와 관찰자 효과’라는 기사에서 베이퍼 웨이브를 라운지·스무스 재즈·무자크(Muzak)에 영향을 받은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바로가기)
무자크는 상점·식당·공항 등에서 배경 음악처럼 내보내는 음악을 뜻한다. 베이퍼 웨이브는 무자크 같은 상업적이고 익숙한 음악으로 공허한 분위기를 내고자 한다. 무드 슐라는 “SNS에 움짤 같은 이미지를 올릴 때, 배경음악이 필요하다”며 “그런 건조한 음악이 베이퍼 웨이브다”라고 밝혔다. 그는 멜로디가 아무리 좋아도 ‘허무한’ 음악이라고 덧붙였다.
무드 슐라는 ‘㈜3D정보GNG’라는 이름으로 베이퍼 웨이브 음악을 여러 곡 만들었다. ‘LET'S TALK BUSINESS (☞회의chill out☜)’는 뱅크 ‘가질 수 없는 너’ 전주 부분을 샘플링해서 만든 음악이다. 이 음악은 프레젠테이션 배경음악 용도로 만들어졌다.
사운드 클라우드, ㈜3D정보GNG
2. 느낌만 내면 베이퍼 웨이브다
베이퍼 웨이브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문화’다. 베이퍼 웨이브에서 ‘베이퍼’(Vapor)는 수증기를 뜻한다. 베이퍼 웨이브는 수증기처럼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장르다.
아이유 ‘스물 셋’이나 지코 ‘말해 Yes or No’는 음악만 따지면 베이퍼 웨이브로 분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노래들이 베이퍼 웨이브로 분류되는 이유는 베이퍼 웨이브같은 그래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베이퍼 웨이브는 시각적으로 ‘90년대 분위기를 가진 3D영상’, ‘조악한 포토샵 기술’, ‘정체불명의 문자’ 등을 시각적 이미지로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지난 3월 공개된 오혁, 프라이머리 ‘아일랜드’(Island) 뮤직비디오는 영상에 베이퍼 웨이브 기법을 이용했다. 영상에서 비디오 게임 ‘심즈1’ 캐릭터 같은 형태의 오혁이 등장한다. 오혁은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형광 야자수가 펼쳐진 해변을 걷는다.
유튜브, 1theK
무드 슐라는 “베이퍼 웨이브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베이퍼 웨이브를 “분류를 거부하는 장르”라고 정의했다.
3. '응답하라' 같은 복고 문화가 아니다
베이퍼 웨이브는 일반적인 ‘복고’ 문화와 다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낡은 라디오, 전화번호부 같은 소품을 이용해 복고 분위기를 만든다. 베이퍼 웨이브는 이런 ‘아날로그’ 감성과 다르다.
베이퍼 웨이브에서 자주 쓰이는 이미지는 1990년대에 유행한 ‘윈도우95’, ‘어설픈 3D 그래픽’, ‘고전 에로 게임’을 소재로 사용한다. 이런 점을 들어 무드 슐라는 베이퍼 웨이브가 “복고 문화와 다르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10대나 20대 스승은 인터넷이다”라며 그들의 추억이 인터넷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금 30대 이상은 ‘베이퍼 웨이브’ 이미지가 복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나 어린 세대는 해당 이미지를 복고가 아니라 신선한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드 슐라는 “베이퍼 웨이브는 역사적인 맥락이 희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서 노태우 대통령이나 쥐포를 구워먹는 이미지는 베이퍼 웨이브가 아니지만, ‘꿈돌이’는 베이퍼 웨이브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꿈돌이는 1993년에 열린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다.
4. 인터넷 세대를 위한 쉬운 예술
무드 슐라는 베이퍼 웨이브가 SNS 텀블러에서 시작한 문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청년들은 인터넷과 관련한 추억이 많다”고 말했다.
무드 슐라는 “SNS를 사용하는 요즘 아이들은 프로그램으로 음악, 이미지, 움짤을 직접 만든다”며 “베이퍼 웨이브는 벽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 예술을 하려면 오래 작업을 해야했고, 연구가 필요했다”며 “인터넷 예술은 기존에 있는 작품을 이용해 조금만 건들면 특이하단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NS에 올려져 있는 베이퍼 웨이브 작품들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에 나온 음악·그래픽 작업을 빌린다. 그들이 차용하는 이미지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다.
5. 디지털 히피 문화
무드 슐라는 베이퍼 웨이브 문화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히피적인 정서가 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히피 문화는 1960년대 미국에 유행한 문화다.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은 베트남 전쟁과 불안한 사회 때문에 물질문명을 부정하는 히피 문화에 빠져들었다.
무드 슐라는 “젊은이들은 이제 정치 이야기하면 싫어한다”며 “투쟁·반항 이런 것들보단, 별생각 없이 우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원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6. 한국에 도착한 베이퍼 웨이브
지난해, 한국에 베이퍼 웨이브가 상륙하기 시작했다. 무드 슐라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작곡가 히치하이커(Hitchhiker)가 ‘일레븐’(Eleven)으로 베이퍼 웨이브를 시도했다.
유튜브, SMTOWN
올해 한국에서 ‘베이퍼 웨이브’는 오혁·프라이머리·아이유·지코같은 대중적인 가수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무드 슐라는 해당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행에 대해 “젊은이들이나, 힙스터라고 불리는 부류는 베이퍼 웨이브를 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힙스터는 인디 음악 같은 비주류 문화를 지향하는 청년을 뜻한다.
무드 슐라는 “특히 뮤직비디오 감독은 유행에 민감하다”며 “그들은 베이퍼 웨이브를 한 번씩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외국에 유행한 문화를 급하게 받아들여, 2차 생산에 그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