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다 큰 여자잖아" 정새난슬 인터뷰

2015-11-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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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정새난슬 제공가수 정태춘·박은옥 씨의 딸 정새난슬(35) 씨는 가수 부모님 밑에서 자

이하 정새난슬 제공

가수 정태춘·박은옥 씨의 딸 정새난슬(35) 씨는 가수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자신은 음악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엄마 같은 낭랑한 목소리도, 아빠 같은 작사·작곡 능력도 없다며 가수가 될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영국 런던 첼시아트디자인칼리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20대 대부분은 끝도 없이 방황했다. 영화, 패션, 홍보 쪽 일을 하다 그림 그리는 게 그나마 본성에 가장 가까운 거 같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2013년 펑크록 밴드 '럭스' 보컬 원종희 씨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이후 이혼을 하게 되고 싱글맘이 됐다. 아픔을 치유하며 어느새 '음악'에 가까워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직접 작사·작곡한 곡들로 앨범을 냈다. 돌고 돌았지만 결국은 음악이었다.

-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이라는 앨범을 냈다.

직접 작사·작곡한 5곡으로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이라는 EP(비정규) 음반을 냈다. 타이틀곡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은 영국 런던 유학 시절 이야기를 담은 타이틀 곡이다. 가사처럼 '마음이 무얼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았다.

이하 유튜브, deecompanykorea

- 타이틀곡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 외에도 EP에는 청춘의 기억을 담은 <여자가 되었다>, 술잔은 꺾어도 삶은 꺾이지 말자며 친구에게 말하는 <김쏘쿨>, 엄마가 아기에게 불러주는 주술적인 타악의 자장가 <쉿> 등이 실렸다. 인트로 <엄지 검지로>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았다.

'엄지 검지로'는 맥에 있는 '개러지 밴드'라는 프로그램으로 녹음했다. 악기도 못 다루고 별 다른 테크닉이 없으니깐 내 목소리와 단어 만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여러 목소리를 내 아카펠라처럼 부르기도 했고 '사랑해요'라는 가사 밑에 '그대 눈동자에 건배' 라는 가사를 중첩시키기도 했다. 아버지와 편곡을 거쳐 지금의 곡이 탄생했다.

'엄지 검지로 접었다 폈다'는 가사 자체가 내 결혼 생활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접었다 폈다'하고 정말로 '미웠다 좋았다', '까맣다가 하얗다'하는 내 마음의 번잡스러움을 곡에 넣었다.

- 일러스트레이터로 꽤 많이 알려져있다. 앨범도 냈으니 이제 가수라고 불러도 될까.

5곡은 자기표현 도구 중 하나다. 내가 차후에 가수로서 어떤 활동을 하겠다 하고 앨범을 낸 건 아니다. 표현하지 않고 덜어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해서다. 거창할 수 있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한 첫 걸음이다.

정새난슬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 앨범 커버 사진

- 노래도 직접 부르고 작사·작곡도 했다. 작곡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28살 때 기타 코드 3개를 처음 배운 날부터 작곡을 했다. 기타 연습을 하다 코드를 바꾸고 그 위에 가사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계속해왔다.

- 일러스트레이터에 싱어송라이터, 책쓰는 일까지 20대 때도 거침이 없었을 거 같다.

20대 때는 대부분 그렇지만 방황 그 자체였다. 나의 화두는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다. 아빠에게는 '시대적인 요구'나 '사회 참여'라는 뚜렷한 화두가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인생의 주제는 뭘까' 했다. '내가 뭔가를 하려면 뭔가가 되야해' 라는 강박이 있었으니깐 아무것도 못한 거 같다. 그냥 할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마구 글을 쓰고, 음악을 많이 만들고 그 때도 막 했으면 됐는데 겁이 많은 20대였다.

- 지금 인생의 화두는 찾았나?

이혼까지 하고 나니까 '어둠 장아찌'가 됐다가 바깥으로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고 나니깐 '자기 규정'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 나만의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유동적일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정말로 내 삶에서 여러 창작 활동을 충분히 즐기고 누군가 기뻐해주면 기쁘고 그렇게 살고 싶다.

- 그는 윤도현 씨가 대표로 있는 '디컴퍼니'에 소속되기 전까지 '응석부리지마'라는 1인 제작사를 만들어 음악, 일러스트 활동을 이어왔다. 곡에 어울리는 이미지 작업도 직접 하고 있다.

일상이 건조하다면 재미를 찾아야 한다. 이혼하고 나서도 우울하게 있기 보다는 '이러면 재밌을 거 같아'라는 것들을 한다. 작은 일탈들이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삶을 꾸려가게 하는 거 같다. 작품이라기보다 삶을 즐기는 태도다.

집에서도 딸과 이런 식으로 즐기지 않으면 뭐하러 미술을 배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난슬이 또 저러네", "유난이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딸에게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이상했다"고 남겨지길 바란다.

- 심지어 이혼 숙려 기간이 끝난 날을 기념해 일명 '이혼 짤'을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개인 SNS뿐만 아니라 인터뷰에서 이혼 사실을 여러 번 언급했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이혼은 정말로 개인에게 있어 큰 고통이다. 한 때 내가 '이 사람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했던 사람, 나의 세계에 정말 큰 조각을 잃어버렸다는 건 참담한 경험이었다.

개인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지만 이혼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될 필요는 없다. 내가 실패했다는 자괴감때문에 부끄러워하던 단계를 벗어난 이후에는 '이혼을 하니깐 이런저런 감정들이 느껴진다'라고 타인과 공감하고 싶은 게 크다.

이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피하기보다는 정면 돌파하고 싶은 심정이다. “네, 저 이혼했습니다”라며 선언하고 싶었다. 또 내가 먼저 "저 이혼했잖아요"라고 농담처럼 말하면 사람들도 거기에 대해서 편해 한다. 나의 개인사 때문에 내가 더 불편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혼 숙려 기간이 끝나고 정새난슬씨가 공개한 이혼 이미지

- 부모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민중 가수',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정태춘 씨의 딸인데 음악을 하는 데 영향도 크지만 부담도 많은 거 같다.

아버지가 작사 작곡하는 과정을 어릴 적부터 지켜봤다. 여행 다닐 때도 수첩을 쓰고 노래로 나오고. 원래 모든 뮤지션들이 그랬겠거니 했다. 나도 역시나 사춘기때부터 가사가 좋은 노래를 찾아 듣게 되더라. 근데 아버지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내 것이 후지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묵직함을 내가 따라갈 수는 없다.

- 이번 앨범은 정새난슬씨가 직접 작사·작곡을 했지만 아버지와 편곡 작업을 함께 한 걸로 알고 있다. 아버지와의 편곡 작업은 어땠나?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가 따로 있고 하나하나 선택하는 데 정말 많은 대화가 필요했다. 근데 항상 더 많이 열려 있고 양보한 것은 아버지 쪽이다. 아버지가 음악을 오래 하셨고 전문 음악인이신데. 내 말에 양보를 하고 나는 줄기차게 변화를 요구했다. 아버지지만 존경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열려 있기가 힘든데 말이다.

정새난슬씨와 아버지 정태춘 씨

- 부모님이 가수고 본인도 음악을 한다. 딸도 가수 혹은 무언가 됐으면 하는 게 있나.

아이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 것보다도 아이가 나중에 "니네 엄마 어땠어?" 라고 누군가 물으면 주저 하다가 희미한 미소를 짓고 갑자기 푸하하 웃으면서 “우리 엄마, 그 여자 진짜 재밌었어” 라고 운을 떼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비난이든 칭찬이든 그 게 제일 환상적인 모녀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로서도 나를 바라봐 주고, 다른 여성으로서도 나를 바라봐주는.

- 그림, 음악 외에 책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바로 음악과 글이다. 결국 뿌리는 하나인 거 같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림에서 글쓰기로 가고 음악까지 오게 됐다.

- 책은 어떻게 쓰게 됐나?

책을 쓰자는 권유는 아이를 낳고 그 이야기를 쓴 것이 콘텐츠로 쌓이게 됐고 책으로 한 번 엮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됐다. 나를 지켜봐주시던 예전 상사분의 제안이다.

내가 기괴하고 특이한 캐릭터로 보이는 데, 다름의 가치를 찾아내서 내가 발언할 수 있게 끌어 주고 포기하지 않게 안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늘 포기가 빠른 편이었는데 늘 “난슬아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라며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분들이 항상 있다.

이혼 후에도 내 주변분들이 내가 침몰하지 않도록 손을 뻗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끌어내줄 때, 주변부에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나 역시도 관계 속의 인물이구나를 깨닫게 됐다.

- 음악이 모두 자신의 경험담이다. 책도 그럴 거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다루나?

책은 기획의도가 이혼하기 전에는 출산, 육아와 결혼 생활, 타투와 같이 비주류적인 문화를 좋아하는 여자로서 사회적인 시선에 부딪히고 살아가는 단상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이혼을 하게 되면서 약간 바꼈다. 결혼 생활이 왜 끝났는가. 이혼녀로서의 삶, 싱글맘으로서의 삶에 대해 적게 될 거 같다. 물론 비주류적인 문화를 좋아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 그림, 음악, 책이든 정새난슬 씨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타투가 됐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다른 가치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하는 경우, 이상함 속에서도 자기를 너무 바깥으로 내몰지 말았으면 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면 '여기 진짜 이상한 여자가 있으니 걱정하지마' 그런 공감대를 주고 싶다.

“이상한 여자여도 괜찮아. 다 큰 여자잖아"

타인에게 정의되고 어떤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스스로는 그저 '다 큰 여자'로서 존재하며, 자기 규정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정새난슬 씨는 내년 3월 에세이 '다 큰 여자'와 정규 1집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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