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왜 논란을 감수하고 이혜훈을 발탁했을까
2025-12-29 10:28
add remove print link
고도의 정치적 포석 깔린 승부수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을 전격 지명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내년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불과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나온 이번 인사는 단순한 전문가 영입을 넘어선 고도의 정치적 포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조국혁신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핵심 지지층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게 빤함에도 이 대통령이 이 같은 강수를 둔 배경에는 지방선거 승리를 향한 '외연 확장'과 '실용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산이 작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인사의 첫 번째 노림수로 중도 및 합리적 보수층의 흡수를 꼽는다. 이 후보자는 3선 의원 출신의 중량감 있는 보수 정치인이자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의 경제 전문가로 보수 진영 내에서도 정책 역량만큼은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표방했던 '실용적 통합'의 가치를 이번 인사를 통해 직접 증명해 보임으로써 여권에 거부감을 느끼던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안정감을 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 서초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닦은 이 후보자의 상징성을 활용해 수도권 보수 표심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야권의 분열과 정체성 혼란을 유도하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 후보자의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의힘은 그를 즉각 제명하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는 등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야권 내부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으며, 여권 입장에서는 상대 진영의 인재를 흡수함으로써 야당의 인물난을 가속화하는 부수적 효과까지 거뒀다. 아울러 조국혁신당 등 선명성을 강조하는 세력과의 일시적 대립을 감수하더라도 본인이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은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정책적 측면에서는 내년 예산 편성의 효율성과 시장의 신뢰 확보라는 실익을 노렸다. 이재명 정부는 확대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 재정 건전성 관리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평소 정부 지출 억제와 시장 경제를 강조해 온 이 후보자를 예산 수장으로 앉힘으로써 정책의 균형감을 맞추고, 보수적 시장 참여자들에게 경제정책의 안정성을 선전하려 했을 수 있다. 이는 지방선거 전 경제 실정 프레임을 차단하려는 방어적 성격의 포석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승부수가 연착륙할지는 미지수다. 같은 진영마저 크게 반발한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 후보자가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대통령을 석방하라"고 외쳤던 전력을 문제 삼으며 임명 동의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지지층 내부에서도 "내란 옹호 세력에게 장관직이라는 면죄부를 줬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만큼 당내 결집력이 약화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이 대통령은 지지층의 단기적 반발을 '탕평'이라는 명분으로 돌파하려 하겠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재점명돼 논란이 확산할 경우 지방선거 가도에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인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핵심 지지 기반의 균열까지 감수한 채 던진 도박일 수 있다. 이 후보자가 국회 검증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 중도층의 지지를 견인한다면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은 탄력을 받는다. 반대로 지지층의 대규모 이탈과 야권의 공세에 막혀 낙마할 경우 정권 초반 국정 동력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