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지하상가가 '개점휴업' 들어간 속사정
2015-11-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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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위키트리 지난 6일 위키트리로 제보가 들어왔다. "80대 노인 '의정부 시장님 얼굴

지난 6일 위키트리로 제보가 들어왔다.
"80대 노인 '의정부 시장님 얼굴 한 번 뵐께요', 막아서는 경찰들, 왜?"
의정부 지하상가 상인들이 의정부 시청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사진이 있었다. 글쓴이는 "큰 길을 놔두고 인파가 가득한 골목길을 전속력을 다해 질주하는 시의 정책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시를 규탄했다.
갈등의 요지는 '지하상가 점용·관리권 환수 문제'였다. 의정부시는 내년 5월 의정부 지하상가의 관리권을 환수할 예정이다.
이에 지난 11일, 위키트리는 의정부 지하상가를 직접 찾았다.
지역 최대의 지하상가 '의정부 지하상가'
의정부 지하상가는 1호선 의정부역을 사이에 두고 동부와 서부로 나뉜다. 이 지역 최대의 지하상가다. 14만 평 대지에 603개 매장은 작은 섬만 한 크기를 자랑한다.
"파리만 날리고 있죠. 뭐. 아니, 파리도 안 날아와요"
이날 찾은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 지하상가는 꽤 한산했다. 한 상인은 "요즘 (여기가) 대부분 이렇다. 손님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지하상가는 사람들의 발디딜 틈 없는 '핫 플레이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빈 상가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동, 서부할 것 없이 상가 변두리일수록 특히 그랬다. 심한 곳은 라인 하나가 통째로 비어있었다.
의정부 지하상가가 '개점휴업'에 들어간 속사정은 뭘까. 상인들은 문제의 발단이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이 내년 5월 상가의 점용권(한 곳을 독점해 사용할 권리) 환수를 공표하면서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시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내년 5월에 점용권을 환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인 측은 "시에서 지하상가 관리에 소홀한 점이 있으니 환수는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시는 지난 7월 "의정부 지하상가가 2016년 5월 환수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상가와 인근 부동산들에 돌렸다. 이에 상인들은 '지하상가 상인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만들어 지난 17일 의정부 시청에서 집회를 열었다.
비대위 위원장 이한수(50) 씨는 “지하상가에 들어오겠다고 제2금융권에서 빌린 금액이 3억 원”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다. 비대위 자체 추정 결과, 지하상가 상인들의 제2금융권 채무 금액은 약 100억 원 정도에 달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금융권 밖으로 진 빚은 추산이 불가능해 그 돈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될 것”이라며 “여기서 평생 장사하겠다는 게 아니다. 단지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완충기간’이라도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지하상가에서 매장을 운영 중인 한 시민도 “(시의 환수 계획이) 마치 공산당에게 당하는 기분”이라며 울분을 표출했다.
이에 앞서 비대위는 두 차례 집회를 개최했었다. 안병용(59) 의정부 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시청에 항의 방문을 하며 환수 결정을 재고해 줄것으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는 "계약대로 내년 5월 지하상가 점용권을 환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상인 "시가 관리, 단속 책임 소홀했다... 시 "주목할 건 내년 5월 점용권 환수한다는 사실"
의정부 지하상가는 1992년 주식회사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과 경원도시개발(이하 ‘경원’)이 참여한 BTO(민간투자) 방식으로 건설됐다.
BTO란 민간 기업이 자금, 노동력 등을 투자해 공유재산(지방공공단체가 소유한 재산)을 설립한 후, 일정기간 무상 사용하다 공공기관에 소유권을 넘겨주는 방식을 뜻한다.
의정부 지하상가는 1996년 5월 개장해 내년 설립 20년째를 맞는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이하 ‘공유물관리법’따르면 BTO로 건립된 공공재산의 최대 임대 기한은 20년이다.
비대위는 시가 지하상가 단속을 게을리한 책임이 있어 환수를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시와 동아, 경원이 1997년 맺은 ‘의정부역 지하도로(상가) 사용계약서’에 나온 조항을 들었다.

계약서 제17조 ‘전매(양도·양수) 행위관리’에 따르면 관리자(동아, 경원)는 상가점포에 대한 전매행위를 단속해야 하며, 연 4회 점포계약 현황을 파악하고 관리하여 연 1회 관리청(의정부시)에 서면 통보해야 한다.

상인측 비대위 이대원(48) 씨는 “동아와 경원이 연 1회 의정부 시에 점포주 변경 내역을 송부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그 증거로 내용증빙서류 한 장을 공개했다.

동아가 지난 8월 의정부시 도시과와 지역경제과에 송부한 이 문서엔 “의정부역지하상가 점용권에 대한 ‘점용권 권리(점포주) 변경내역’ 및 ‘점포임대차 변경내역’을 첨부와 같이 통지한다”고 적혀있다.
이 씨는 “시가 점포주들의 매매행위를 알았으면서도 방관했다”며 “애초에 매매행위 자체가 불법이었다면 사전에 단속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의정부시 도시과 관계자는 “매매행위가 불법이냐, 아니냐는 법률적 검토를 따져봐야 할 소지가 있다”며 “설령 상인들 사이에서 이뤄진 매매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내년 5월 점용권이 소멸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비대위는 '시의 관리 책임 소홀'도 유예 이유로 꼽았다. 비대위 위원장 이한수 씨는 "시가 10년 전, 우리 지하상가 바로 위에 대형 백화점 설립을 허가해주는 바람에 손님 절반을 잃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그러면서 보상금으로 준 게 1년에 20만원씩 총 80만 원이었다. 하루에 500원 꼴"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지하상가에 큰 비가 들이쳐 장사가 불가능했던 게 3번 정도 있었다”며 “백화점 건립으로 인한 간접 피해 금액, 천재지변 피해 금액 등을 환산한 기간만큼 시가 환수를 미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유물관리법에 따르면 공유재산은 최대 20년까지 민간 임대가 가능하지만, 특별한 경우 최대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 법 21조 4항은 “다음 각 호의 사유로 사용·수익 하지 못한 기간의 범위 내에서 허가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면서 그 사유로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난으로 피해를 본 경우’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귀책사유로 그 재산의 사용에 제한을 받은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민간 기업에 시가 특별한 이유 없이 제동을 걸 수는 없는 일"이라며 "시가 지하상가 위에 건축된 백화점에 설립 허가를 내준 데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낄 수는 있으나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사건은 법적으로 따지면 대개 공공기관에 책임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며 "상인들은 불공평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상생 사례' 서울 고속터미널 상가와 인천 부평상가 참고할 수 있어
의정부 지하상가 '갈등의 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시와 상인 모두 ‘윈윈’한 대표 사례로 꼽히는 인천과 서울의 지하상가를 참고할 수 있다.
인천에는 지하상가가 총 15개 있다. 인천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이 가운데 13개는 민간이, 2개는 공단이 운영하고 있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중앙 지하상가’는 공단이 관리 중인 상가 중 하나다. 2012년 민간 기업의 무상 임대 기간이 만료되며 점용·관리권이 시로 넘어왔다.
공단은 관리권 환수에 앞서 인천시와 지하상가 상인,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제정한 ‘인천광역시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 조례’를 참고해 큰 갈등 없이 지하상가 문제를 해결했다.
조례에 따르면 무상사용 기간이 끝난 상인은 매장을 리모델링해 그 비용을 환산한 기간만큼 점용권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2012년 점용권이 만료된 대다수 상인들이 이 방법으로 기간을 연장했다.
인천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인천에 있는 모든 지하상가는 이 조례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의정부시와 상인 측이 빚은 갈등의) 해결 방법으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서초구에 있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도 ‘상생’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터미널 지하상가는 2011년 전면 개보수 공사를 하면서 상인들의 큰 반발을 샀다.
개보수 공사가 시작되면 모든 상가시설을 철거해야해 상인들과 사실상 ‘계약해지’가 이뤄질 수 있어서였다.
상인 측에서 연 몇차례 집회 끝에 시는 이들과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한 가지 방안을 구상했다. 시가 개보수 공사와 지하상가 관리권을 맡길 용역 업체를 공개 입찰하되, 기존 지하상가 상인들이 만든 업체가 참가할 시 그 과정에서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상인들이 조직한 업체는 공사를 결정한 2011년 큰 어려움 없이 용역 대상으로 낙찰됐다. 2012년 공사 완료 이후 관리권도 함께 맡고 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상가가 낡아 개보수를 하기 위해 민간 업체 이양을 결정하니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혔다”며 “하지만 상인 측과 꾸준히 대화를 나눈 끝에 해법을 찾았고 현재도 무리 없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상인들이 만든 업체가 시설개보수를 맡고, 개보수후 상가 점용권을 받아 계속 영업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