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혹독해” 영화계 뛰어든 청년들의 비명

2016-01-0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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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flickr "영화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대학교에서 영화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료사진 / flickr

"영화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대학교에서 영화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영화과를 나온 A씨는 “학교에 들어가자 교수님이 처음 한 이야기는 '백수가 될 각오를 하라'였다"고 말했다.

A씨는 "일부 학생들은 영화계를 떠나거나, 전공과 무관한 진로를 선택한다"고 했다.

요새 영화계에서 일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젊은이들은 2000년대 후반 영화를 공부한 학생들이 많다. 한국 영화계가 명작을 쏟아내던 2000년대 초반 영화를 보면서 꿈을 키운 세대다. 이 시기에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등이 개봉했다.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총 영화관객 수는 2억1728만8825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치다. 영화 수익 대부분은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영화관과 투자 배급사가 나눠 가진다. 영화계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여전히 혹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영화계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 4명을 인터뷰했다.

졸업을 맞이하는 대학생들 / 위키트리

영화 현장에서 표준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도입했으면 좋겠다

'독립영화 스태프' 박지수 (가명·20대 후반)

한 장편 독립영화에서 스태프로 참여했다. 촬영 준비단계(Pre-production)에는 장소 조사를 맡았다. 촬영 단계(Production)에는 현장 진행이나 회계를 했다.

나는 급여로 딱 최저임금(2015년 기준으로 5210원)을 받았다. 내가 참여한 영화에서 모든 스태프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는 표준 근로 계약서가 아니다.

영화산업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 위키트리

표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 일한 시간만큼 급여를 받을 수 있다. 4대 보험 가입을 해주면, 실업 급여도 받을 수 있다. 독립영화 제작 현장에서 이런 기본적인 처우가 보장됐으면 좋겠다.

또한, 영화 현장에는 경력에 따라 급여가 다르게 책정된다. 기술 스태프은 경력에 따라 ‘퍼스트’, ‘세컨’ 등 구분이 있다. 이들은 실제 참여 작품 수에 따라 급여가 오른다. 연출과 제작부는 기술 쪽과 다르게 경력 인정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급여도 잘 오르지 않는다. 모든 스태프 임금 책정에 있어 공평한 기준이 있으면 좋겠다.

‘표준 근로 계약서 작성’과 제대로 된 ‘경력 인정’ 두 가지를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표준 근로 계약서'란?

영화 스태프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표준 근로 계약서는 지난 2011년 처음 도입됐다. 표준 근로계약서는 하루 근무 12시간 제한, 그 이상 일하면 초과 근로 수당 지급, 4대 보험 가입, 일주일 중 하루는 휴무 등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표준 근로 계약서는 ‘권고’일 뿐 강제성은 없다.

지난해 윤제균 감독이 영화 ‘국제시장’ 촬영 당시 막내 스태프까지 표준 근로 계약서를 쓰게 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스태프는 인맥… 권리 주장할 수 있는 환경 아니다

'상업영화 스태프' 김지훈 (가명·20대 후반)

나는 3년 전 지인의 소개로 처음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영화 제작에서 회계를 맡고 있다.

영화 스태프는 영화사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영화 작품과 계약을 맺는다. 그래서 작품 당 급여를 받는다. 나는 최근 작품에서 월 2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 영화 촬영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임금이 삭감되기도 한다.

모든 스태프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일반적인 근로계약서와 달리 근로 시간이나 여러 근로 환경에 대한 항목들이 부족하다. 작은 영화일수록 표준 근로 계약서가 아닌 영화사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한 계약서를 쓴다.

영화 스태프는 ‘윗사람’이 불러야 일을 할 수 있다. 스태프는 인맥을 통해서만 지속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 스태프를 계속하고 싶다면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 만약에 윗사람에게 밉보여서 다음부터 나를 찾지 않는다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프리랜서인 영화 스태프들에게 이건 아주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한국 영화계가 참 좁다. 떳떳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시에는 그걸 들어주겠지만, 다음부터 찾질 않을 거다.

계약서 항목은 스태프에게 무의미하다. 어느 정도 직급이 높으면 그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부원이라 대부분 스태프는 이런 권리를 주장할 환경이 되지 못한다. 그냥 위에서 그런 환경을 잘 마련해준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영화 제작사, 야근은 많고 돈은 적게 준다

'영화 제작·배급사' 유은창 (가명·20대 후반)

나는 영화 제작·배급사에서 일한다. 내 첫 직장이다.

월급은 100만원 초반이다. 최저 시급 이하다. 식대는 급여에 포함돼있다. 근로 계약서는 내가 회사에 요구해서 작성했다. 내가 회사에서 처음으로 근로 계약서를 쓴 사람이다.

계약서상 퇴근시간은 6시다. 6시에 퇴근하는 일은 드물다. 정시퇴근을 하고 싶어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월급이 너무 적다. 야근·주말수당도 없다. 지나친 업무량에 비해 일할 사람이 적다. 어쩔 수 없이 야근해야 한다. 직원들의 피로도가 상당하다.

영화 배급사기 때문에 나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자주 ‘관객과의 대화’(GV)에 간다. 지방에 있는 영화관으로 출장을 갈 때도 있다. 이때 수당은 따로 없다. 주말에 개인적인 휴식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업무 시간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일을 오래갈 수 없을 것 같다. 명백한 노동력 착취다. 영화계 전반에서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일을 계속할 동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진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일에서 보람을 느낄 때는 크게 없다. 어떤 보람이나 성취를 느낄 만큼 복잡한 업무가 아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일을 하려고 내가 영화를 전공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담당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영화 홍보 프리랜서

이지선 씨 / 위키트리

대기업 '영화 홍보' 프리랜서 이지선 (가명· 20대 후반)

한 대기업에서 영화 홍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자세한 업무를 알려줄 수는 없다. 이 바닥은 너무 좁다.

나는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프리랜서다. 연봉은 2000만원 내외다. 다만 프리랜서라서 월급은 불규칙하다. 한 달 월급을 100만원 이하로 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부업으로 과외를 하고 있다. 월급이라도 제때 들어오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분의 경우 봉급 일부를 영화 관람권으로 받기도 했다.

프리랜서라서 대기업 담당자가 나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존중받고 일을 한다는 느낌은 없다. 프리랜서라서 그런지 직원이나 담당자가 실수하면 내가 다 떠맡는 경우가 많다.

다른 외국계 영화사에 일하는 친구는 신입이라는 이유로 아침 일찍 출근해 상사의 책상을 닦거나, 옷차림을 지적받기도 한다. 대부분 영화계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스스로 그만두는 사람도 많지만, 담당자에게 밉보여 일을 타의로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무엇보다 프리랜서라 대기업 담당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힘들다. 일방적인 말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많다. 갑과 을의 관계가 너무 뚜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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