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서'가 된 엄마 치과의사
2016-02-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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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이후로 인생에서 이렇게 중독된 일은 처음이에요."이하 위키트리 "폴댄스는 초콜
"영어 공부 이후로 인생에서 이렇게 중독된 일은 처음이에요."

"폴댄스는 초콜릿 같아요. 달콤한 중독요. 인생에서 이렇게 중독된 일은 처음이에요."
폴댄서 오현진(39) 씨가 폴 위에 올랐다. 거꾸로 매달린 오 씨가 다리를 180도로 쫙 펼쳤다. 그는 왼쪽 발목을 폴에 마찰시켰다. 이내 다리로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온 몸이 새처럼 공중에서 펄럭거렸다. 오 씨는 불혹의 나이에 두 아이 엄마다.
오 씨는 원래 10년 넘게 치과의사 생활을 했다. 소위 돈을 "잘 버는" 직업을 때려치고 폴 댄스를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오 씨는 2009년 처음 폴댄스를 시작했다. 평소 여러 형태의 춤에 관심을 갖다가 호기심에 시도했다고 한다. 치과의사 일을 하며 점심시간, 퇴근 후 운동했다. 급기야 지난 2013년 9월 병원 옆에 폴댄스 학원을 열었다. 처음엔 1년 동안 치과와 폴댄스 운영을 병행했다. 그러다 관심이 점점 폴댄스로 쏠렸다. 결국 폴댄스를 선택했다.
“나이가 있다 보니 결단하고 바로 질렀어요. 많이 따져보고 고민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가슴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싶어서 결정했었어요.”
오 씨는 "더 젊었을 땐 못했을 거 같다. 불혹이 가까워져 오니 이제 (치과의사도) 할 만큼 했다 싶었다"고 했다.
오 씨가 전문 폴댄서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만 해도 폴댄스가 선정적이란 편견이 지금보다 더 짙었다. 폴댄스는 인도에서 시작된 공연예술 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야한 봉 춤’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오 씨에게는 편견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전문 폴댄서가 되겠다고 하니 처음엔 남편도 비웃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동기들은 물론 주변 의사 친구들에게도 학원 개원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고 했다.
이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방송에서 오 씨를 본 지인들이 먼저 연락이 온다고 한다. 오 씨는 지난 2월 9일 KBS 2TV '머슬퀸 프로젝트'에서 가수 가희(박지영·35)를 지도하며 그와 한 팀으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오 씨가 ‘제2의 인생’을 살게 한 폴댄스 매력이 궁금했다. 그는 “정신적인 성취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에게 폴댄스 동작 하나하나를 완성하는 일은 마치 게임에서 임무를 깨는 일과 같다고 한다. 오씨는 “내일 눈 뜨면 바로 이것부터 해봐야지, 막 이걸 해봐야 내가 뭔가 손에 잡힐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일은 폴댄스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정말 멋있다"고 덧붙였다.
폴댄서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실 오현진 씨는 아무 폴이나 타지 못한다. 그에겐 금속 알레르기가 있다. 금속 재질 폴에 매일 붙어서 운동해야 하는 폴댄서에겐 치명적인 질환이다. 그는 “폴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폴이 너무 좋은데 금속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폴댄스를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전 세계에서 어떤 재질로 폴을 만드는지 인터넷·책 등을 찾아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폴댄스 지식을 많이 쌓았다. 결국 오 씨는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재질의 폴을 찾아냈다. 그는 외부에서 폴댄스를 선보일 일이 있을 때, 항상 자기 '폴'을 들고 다닌다.

오현진 씨는 자신을 ‘노력형 댄서’라고 칭했다. 그는 “어렸을 때 몸치”였다며 “여기까지 온 게 ‘세상이 이런 일이’에 나갈 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라 공부하듯이 폴댄스 동작 하나하나를 몸에 ‘각인’ 시켰다. 그가 ‘성실한 댄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 씨는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는 “김연아 씨가 말한 하루 4시간 운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폴댄스는 운동 강도가 센 편에 속한다"고 전했다. 폴댄스는 춤과 체조를 결합해 세로로 된 폴을 잡고 춤을 추도록 한 운동이다. 폴을 잡고 매달리거나 폴을 중심으로 회전력을 이용해 돈다. 폴댄스를 15분 출 때 소모되는 열량이 1시간 뛰는 러닝머신과 같다고 한다. 오 씨는 “기계체조를 난이도 10으로 봤을 때 폴댄스는 7 정도인 듯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폴댄스 운동 효과를 묻자 그는 “특히 복근 발달, 혈액순환에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꾸 거꾸로 매달리니 여드름이 없어지더라”고 웃으며 경험담을 전했다. 이어 의사 출신답게 의학적 효과도 덧붙였다. 그는 “해부학책을 보면 임파선이 몸에서 많이 접히는 곳에 모여있는데 폴댄스를 추며 그쪽을 자꾸 자극해서 전체적으로 순환기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오현진 씨는 폴댄스에 드리워진 선정적이란 편견을 깨고 한국 폴댄스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폴댄스 동작을 책으로 정리하고 있는 작업이 그중 하나다. 오 씨는 "해외에는 폴댄스 동작이 용어로 정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며 "폴댄스가 국내에서 스포츠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폴댄스를 ‘봉 춤’을 넘어 ‘예술 스포츠’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며 오 씨 눈이 반짝였다.
인터뷰가 끝난 뒤 오현진 씨가 위키트리를 위해 폴댄스를 선보였다. 지난 2월 9일 KBS 2TV '머슬퀸 프로젝트'에서 공연했던 안무 영상이다.
*사진·영상 = 전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