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그 이후의 삶
2016-03-01 12:30
add remove print link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당시 유명 음식점 '명월관'의 별관인 '태화관'으로 일군의 사내가 몰려들었다.
이들 손에는 '독립선언서'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조선이 자주 민족임을 널리 알리고, 일제의 한일병탄을 준엄히 꾸짖는 내용이었다.
'독립선언서'에는 태화관에 모인 33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천도교·기독교·불교계를 대표해 참가한 종교인들이었다. 승려 한용운이 선언서를 대독한 뒤, 대표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했다.
같은 날, 전국 각지에서 이들의 뜻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록에 따르면 총 106만 명이 충남 천안, 평남 강서, 경북 대구, 전북 익산 등에 모여 '독립선언' 집회를 열었다.
민족대표 33인의 말로는 제각각이었다. 일제는 이들에게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언도했다. 일부는 옥중 병사했고, 일부는 친일파로 변절했다.
3·1운동 이후 33인의 삶을 간략히 소개한다.
1. 손병희(1861~1922) - 징역 3년, 옥중 병사
2. 권동진(1861~1947) - 징역 3년, 이후 우익 진영(김구) 원로로 활동
3. 오세창(1864~1953) - 징역 3년, 출소 후 서예가·전각가로 활동
4. 임예환(1865~1949) - 징역 2년, 사후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추서
5. 나인협(1872~1951) - 징역 2년, 사후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추서
6. 홍기조(1865~1938) - 징역 2년, 사후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추서
7. 박준승(1866~1927) - 징역 2년, 감옥 생활 후유증으로 1927년 사망
8. 양한묵(1862~1919) - 재판 중 사망
9. 권병덕(1868~1944) - 징역 2년, 이후 역사서 집필 활동
10. 김완규(1878~1948) - 징역 2년, 광복 후 우익 진영(김구)에서 활동
11. 나용환(1864~1936) - 징역 2년, 출소 후 천도교 원로 및 교육자로 활동
12. 이종훈(1858~1932) - 징역 2년, 출소 후 독립운동 이어가다 만주에서 사망
13. 홍병기(1869~1949) - 징역 2년, 광복 후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14. 이종일(1858~1925) - 징역 3년, 출소 후 빈궁한 삶에 허덕이다 영양실조로 시망
15. 최린(1878~1958) - 징역 3년, 이후 친일파로 변절
16. 이승훈(1864~1930) - 징역 3년, 이후 교육자로 활동
17. 박희도(1889~1952) - 징역 2년, 이후 친일파로 변절
18. 이갑성(1889~1981) - 징역 2년 6개월, 이후 자유당 등에서 정치인으로 활동
19. 오화영(1880~1960) - 징역 2년 6개월, 이후 광주학생운동·흥업구락부 사건 등으로 두 차례 더 옥고를 치름
20. 최성모(1873~1936) - 징역 2년, 출소 후 만주에서 목회자로 활동
21. 이필주(1869~1942) - 징역 2년, 출소 후 경기 화성에서 목회자로 활동
22. 김창준(1890~1959) - 징역 2년 6개월, 출소 후 신학교에서 강사 등으로 일하다 광복 후 월북
23. 신석구(1875~1950) - 징역 2년, 출소 후 목회자 활동, 광복 후 반공주의에 투신하다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총살
24. 박동완(1885~1941) - 징역 2년, 미국 하와이에서 목회자로 활동하다 병사
25. 신흥식(1872~1937) - 징역 2년, 출소 후 목회자로 활동
26. 양전백(1869~1933) - 징역 2년, 출소 후 목회자로 활동
27. 이명룡(1873~1956) - 징역 2년, 광복 후 반공운동에 투신
28. 길선주(1869~1935) - 무죄, 3·1운동 당시 지방에 내려가 있어 참여하지 못함, 후에 목회자로 활동하다가 사망
29. 유여대(1878~1937) - 징역 2년, 출소 후 신의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사망
30. 김병조(1877~1950) - 당시 자리에 없어서 체포되지 않음, 광복 후 소련군에 의해 시베리아 수용소에 보내졌다가 그곳에서 총살
31. 정춘수(1875~1951) - 징역 1년 6개월, 후에 친일파로 변절
32. 한용운(1879~1944) - 징역 3년, 후에 신간회 창설·반일 강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영양실조로 사망
33. 백용성(1864~1940) - 징역 1년 6개월, 이후 독립군 모집, 독립자금 모금 등으로 독립 운동 이어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