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임신과 결혼생활 영화로 김수빈 감독 인터뷰

2016-03-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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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빈 감독 / 위키트리지난 2010년 여름, 미혼의 한 23살 대학생이 덜컥 임신했다.

김수빈 감독 / 위키트리
지난 2010년 여름, 미혼의 한 23살 대학생이 덜컥 임신했다.

당시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던 김수빈 감독은 휴학 후 뮤지컬 통·번역가, 조연출로 활동하고 있었다. 딸 노아를 임신한 김 감독은 자신의 상황을 무작정 카메라로 담기로 했다.

김 감독은 뮤지컬 배우였던 남자친구 하강웅(당시 26세)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결혼식부터 임신, 시집살이, 육아 등을 카메라에 집요하게 기록했다. 김 씨는 그 기록을 모아서 다큐멘터리 영화 ‘소꿉놀이’를 만들었다. ‘소꿉놀이’는 2015년 인디포럼에서 ‘올해의 관객상’,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받았다.

지난 2일 ‘소꿉놀이’를 만든 김 감독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영화처럼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특히, 김 감독은 10대, 20대 학생에게 제대로 피임하라고 당부했다.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영화 '소꿉놀이' 스틸컷

임신 테스트기를 세 번째 사용하는 장면이다. 두 번째 검사했을 때까지는 믿지 못했다. 현실 부정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를 불렀는데, 이때부터 상황을 인정했다.

내 전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뭔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거지?”라는 본능에 촬영을 시작했다. 좀 찍고 나면 이해가 될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화로 임신 사실을 말했을 때, 시부모님 반응이 뜻밖에 긍정적이다.

나도 시부모님 반응에 놀랐다. 처음 하신 말씀이 “아기를 낳자”였다. 심지어 시아버님은 “축하해”라고 하셨다. 시간이 지난 뒤, 충격을 드러내면 자식들이 상처를 받을까 봐 괜찮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

부모님 반응은 달랐다. 부모님 사이가 안 좋은 시기였는데, 엄마가 거의 ‘이혼장’ 비슷한 장문의 편지를 새벽에 쓰고 있었다. 그 상황에 내가 임신 사실을 말했다. 큰일을 더 큰일로 덮은 셈이다. 지금 아버지는 좋게 생각하시지만,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요실금같은 난감한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게 인상적이다.

유튜브, Cinema Dal

그림은 애니메이터가 했지만, 스토리보드는 내가 그렸다. 노래도 내가 부른 게 맞다.(웃음)

아기를 낳고 요실금이 생겼다. 출산 후 요실금은 보통 음부가 망가져서 생긴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본인이 불편해서 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파트너와의 관계를 위해 ‘이쁜이 수술’(질 축소 수술)을 하기도 한다. 그게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요실금 같은 고통을 부담스럽지 않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대학교에 다니는 게 힘들었을 것 같다.

김수빈 감독과 하노아 양 / 시네마달 제공

영화에 나오지만, 노아가 나오고 정말 힘들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아침 8시쯤에 노아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은 뒤, 공강 시간에 주로 잤다. 도서관, 과방 등 학교에서 잘 수 있는 모든 벤치에서 잤다. 수업이 끝나면 노아를 다시 찾아서, 밥 먹이고, 놀았다. 노아가 자는 밤 11시부터 번역 일을 했다. 새벽 4~5시에 잠들고, 다시 아침 7시에 일어난다. 이 생활을 대학교에 다니는 1년 반 동안 했다.

그 시기에 남편과 많이 싸웠다. 게다가, 남편이 뮤지컬 배우에서 요리사로 직업을 바꾸기 시작한 시기였다.

혼전 임신을 후회하진 않았나?

남편 하강웅 씨와 하노아 양 / 영화 '소꿉놀이' 스틸컷

후회했다.(단호하게) 결혼은 후회하지 않지만, 계획 없이 생긴 아기에 대해 후회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걸 못해서 후회했다. 돈도 벌어야지, 아기도 봐야지, 학교도 가야지 다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그래서 의지가 된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 동반자인 남편에게 후회는 없다.

미혼인 10대,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수빈 감독 / 이하 위키트리

피임을 잘해야 한다. 나도 잘했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이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시댁에서 ‘캥거루’처럼 살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독립은 못 했지만, 시어머니에게 붙어살 여건은 됐다. 운이 나쁘면 나처럼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혼전 임신에 있어 선택은 두 개뿐이다. 낳느냐, 지우느냐다. 그걸 애초에 막을 수 있으면 좋다. 영화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지만, 이 모든 상황은 피임을 제대로 안 해서 벌어진 일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부분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내가 여태 발버둥을 쳤던 게 이 영화다.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계획했던 자기 꿈이 다 망가진다. 영화 제목이 ‘소꿉놀이’인 이유도 내가 원치 않는 역할을 맡고 놀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영이로 살고 싶었는데, 엄마, 아내, 며느리 역할을 맡게 됐다.

나는 현재 행복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좋음’과 다른 ‘좋음’이다.

혼전 임신 때문에 일찍 결혼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일찍 아기를 낳았다면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처럼 지낼 수 없으므로 많은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부질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낫다. 빨리 아이를 키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밖에 없다. 아마 몇 년 동안은 힘들 거다. 그래도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경험을 더 갖게 된 거다.

안 겪어본 역할 때문에 당황스럽고 힘들 거다. 내가 그 상황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이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제일 어려운 일이지만, 남편과 동등한 파트너가 되는 게 중요하다. 돈, 감정 등 한쪽이 종속적이면 서로 지치게 된다.

그 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김수빈 감독

‘모성애’에 대한 편견이 싫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성스럽다. 육아에서 생기는 역겨움에 대해 말하는 게 너무 금기시됐다. 모성애도 성격처럼 사람마다 다르다. 정도도 다르고, 그 뉘앙스도 다르다.

나는 배 속에 아기가 있을 때는 너무 역겨웠고, 싫었다. 나왔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남자 페니스에서 아기가 나온다고 생각해 봐라. 이상한 일이다. 몸에서 똥, 오줌이 아닌 생물이 나오는 거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모성애를 신비, 성스러움 등 듣기 좋은 단어로 포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성애는 당연한 게 아니다. 이를 당연하게 말하는 것은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모성애를 당연하게 끼워 넣으면 안 된다. 임신, 출산, 육아를 스테레오 타입으로 만들 수 없다.

영화 ‘소꿉놀이’ 메인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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