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255만원' 한국서 무명배우로 먹고사는 법
2016-03-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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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예술인이 예술로 얻은 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예술인이 예술로 얻은 소득은 약 1255만 원이었다. 2016년 대졸 신입사원 초봉이 3893만 원의 3분의 1, 중소기업 신입사원 초봉이 2455만 원의 절반 수준이다. 문체부는 "예술활동만으로는 여전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배우 송광일(26)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뒤 뮤지컬 '난쟁이들'로 데뷔했다. 이후 뮤지컬 '풍월주', 연극 '가출패밀리'등을 거쳐 현재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열연 중이다. 송 씨에게 '난쟁이들'은 '고마운 작품'이다. '난쟁이3', '왕자3' 등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역할로 조금이나마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광일 씨는 2015 최고 남자 신인 배우 4위에 올랐지만, 대학로를 거닐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정은 받았지만, 유명하진 않은 배우다. 만 26세 무명 배우는 예술로 어떻게 먹고살까?

- 예술인 평균 연봉이 1255만 원이라고 한다.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배우를 꿈꿨나?
"고등학교 때, 그때는 돈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연습실에서 라면만 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대학생 시절 대본은 항상 마로니에 공원이나 극단 근처에서 읽었다. 대학로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막상 나와보니 현실은 달랐다."
- 배우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원래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춤, 노래, 연기를 배웠다. 드라마 '별순검'에도 잠깐 나왔다. 기획사가 사기를 쳐서 결국 그만뒀다. 당시 스무 명 정도가 기획사에 있었는데, 지금 활동하는 건 나 혼자다."
- 배우를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나?
"연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적은 없었는데 싫은 적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직후였다. 고향에선 나름 전교 회장, 전교 1등이어서 서울대도 갈 수 있었다. (성적표 인증할 수 있다!) 대학 와서 보니까 키도 내가 제일 작고 사투리, 발성, 연기 모든 게 다 부끄러웠다. 열등감에 시달려 매일 술을 먹으며 방황했다. 아침부터 박카스에 소주를 타 마셨다. 머리카락도 안 자르고 어깨너머로 길렀다. 내 몸을 스스로 괴롭히고. 세상이 싫었다."

- 다시 배우를 꿈꾼 이유는?
"김광림 선생님이 제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가진 말투, 행동. 아무도 할 수 없어. 따라 하려 하지 말고 네가 가진 거로 해봐' 김광림 선생님과 작품 '아가멤논'을 하면서 칭찬도 많이 받고 자신감이 붙었다. 그때부터 열정과 재미가 붙었다. 그러면서 나를 사랑하게 됐다. 그때부터 술·담배를 아예 안 한다. 깔창도 안 끼고."
- 얼마나 버나?
"(웃으며) 지금은 괜찮다. 따로 아르바이트하지 않고 연기만 해서 제 앞가림할 수 있다. 부모님께 완전히 독립해서 혼자 사는 데 드는 비용이 월 70만 원 정도다. 월세, 교통비, 밥값, 통신비 다 포함해서. 밥은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줄인다. 밥을 집에서 다 해먹는다고 하면 일주일에 8000원 정도면 된다. 시장에서 양배추 사다가 고추장에 밥이랑 싸 먹고. 이러면 라면보다 싸게 먹힌다. 요즘 라면 마트 가도 하나에 1000 원인데! 술·담배 안 하는 대신 자신을 꾸미는 데 신경 쓴다. 비싼 옷은 사지 않는다. 이 니트도 동묘에서 5000 원 주고 산 거다.
작품이 없을 때는 일본식 선술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둔다. 작품을 할 때는 밤에 공연해야 하기 때문에 낮에만 한다. 뮤지컬 '풍월주'를 할 때 밤에 공연 마치면 집에 바로 와서 잤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아르바이트해야 했다. 츄러스도 팔고 커피도 팔고."

- 명색이 배우인데, 부끄럽지 않았나?
"전혀. 나는 내가 항상 찌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당장 죽어도 세상은 한국은, 심지어 대학로에서도 모를 거다. 하찮은 존재인데 내가 나를 세우고 체면을(챙긴다)? 그러느라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게 더 창피하다."
- 대학로에도 최저 임금이 있나?
"없다. 회당 얼마씩 주는 데 다 다르다. 연습 페이를 주는 곳도 있고, 아닌 데도 많고. 밥이라도 주는 게 다행이다."
- 계약서는 쓰나? 4대 보험은?
"계약서를 쓰긴 쓰는데 그래도 돈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주변에 그래서 경찰서에 고소까지 해도 극단이 파산 신청하면 끝, 못 받는다. 4대 보험은 아예 없다. 다치면 병원비만 받는 정도다. 우리(연극·뮤지컬 배우)는 대출받기도 힘들다."

-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이 생겼다(2014년 3월 31일 시행). 무엇이 달라졌나?
"똑같은 것 같다. 프랑스는 달마다 지원금도 나오고 보험도 해준다더라, 극단 자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작품도 그래서 다양하다. 우리는 다 로맨틱 코미디인데. 큰 회사에서 투자하지 않으면 극단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데 사실 힘들다. 예술 작품을 (대중에) 이해시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예술 작품을 하면 관객들이 초대한 사람만 주로 온다.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
정말 필요한 건 꼭 대학로가 아니어도 극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많은 공연, 특히 신인 배우, 작가, 작곡가가 도전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으면 한다. 정부 지원이 너무 적으면 '보여주기식'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악덕 기획사도 너무 많다. 돈이 되는 공연을 하면서도 배우들에게는 옹졸한 회사들. '너 말고도 할 놈들 많아'라는 배짱들. 최저임금이 있었으면 좋겠다. 연기해서 버는 돈으로 최소 먹고사는 건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다."
- 복권에 당첨됐다고 상상해보자.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기는?
"아! 그런 사람. 연기를 진짜 잘하는 사람을 봤다. 어떤 교수님이 말해줬는데 '쟤가 연기 잘하는 이유? 집이 잘살아'라고 하더라. 걱정 하나 던다는 게 큰 의미다. (물론 돈 상관없이 잘하는게 좋지만.)
복권에 당첨되면 꿈꿔온 건 있다. 예술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돈 걱정 없이 배우고 연습하는 학교를 만들 거다. 사립학교 너무 비싸다! (○○예고 가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서….)"
- 10년 뒤 어떤 배우 또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 '어떻게 되고 싶다'고 정해버리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냥 지금 주어진 순간에 충실히 하는 게 좋다. 굳이 꼽자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공연 끝나고 관객들이랑 만나는데 회사에서 새벽까지 막 치인 사람들이 많다. 피곤한데 나 때문에 웃었다고 말해주면 정말 감사하다. 이런 공연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도 다 고맙고."
인터뷰가 끝난 뒤 사진을 찍으면서 송 씨는 말했다.
"성북동인가? 어딘가에 예술인을 위한 아파트를 짓는다더라. 그런데 11가구만 들어갈 수 있다. 부부 예술인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단다. 예술인이 몇 명인데, 11가구?"
송광일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중얼거렸다.
"나도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다. 다음 달부터 집주인이 월세 올린다는데…. (한숨을 푹 쉬다 웃으며) 큰일이다."

인터뷰는 예상보다 긴,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송광일 씨는 할 말이 남았다며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현실에도 계속 연기를 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내가 뭘 했을 때 가장 행복한가 (생각하는 건)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