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세' 부르고 외부 연대 없이 이긴 이대 시위

2016-08-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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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Think We&"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

유튜브, Think We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지난달 30일 오후 이화여대 총장실이 있는 대학 본관에서 난데없이 소녀시대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가 들려왔다. 당시 이곳에선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경찰 1600명과 대치하고 있었다. 

손을 맞잡고 스크럼을 짠 학생들은 '다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목소리만큼은 씩씩했다. 중간중간 "오!"와 같은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자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축제라 해도 무방할 만큼 밝은 분위기였다.  

같은 날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이화여대 학생들이 '다만세'를 부르는 영상이 공개되자 큰 주목을 받았다. 유튜브 동영상은 조회수 28만 회를 기록(8일 기준)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Save Our Ewha'에 올라온 영상은 12만 회 재생됐다. SNS에서는 "소녀시대 '다만세'가 새로운 민중가요로 떠올랐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파격적인 시위 방식은 '다만세'뿐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god '하늘색 풍선'을 부르기도 했고, 점거 농성 중 교수들 석사 논문도 돌아가며 낭독했다. 촛불을 드는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해 불빛을 만들었다. 졸업생까지 가세해 '졸업장 반납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이하 이화여대 재학생 제공

 

시위에 동참한 재학생 구모(26) 씨는 지난 5일 "모든 게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구 씨는 "함께 부를 노래로 다만세를 정한 것도, 교수들 논문을 읽은 것도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에서부터 시작됐다.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나오면 학생들이 의논을 거쳐 정했다"고 했다. 

또 "시위 TF가 있긴 했지만 벗(이대생이 서로를 부르는 말)들이 나서서 자체적으로 법률팀, 언론대응팀, 자원봉사팀, 모금팀을 꾸렸다. 시위 참여도 정말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구 씨는 "행진에 촛불이 아닌 스마트폰이 쓰였다. 서로 '후레쉬(플래시), 후레쉬'라며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라고 독려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어떤 충돌도 없이 정말 평화적으로 시위가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런 시위 방식은 과거 시위 문화에 거부감을 느꼈던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3일 이화여대 학생을 응원하기 위해 학교를 찾은 서강대 재학생 한예리(여·27) 씨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한국 시위 문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며 "우리도 시위를 축제처럼 할 수 없나 회의를 많이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학생들이 다만세를 부르고 모여 앉아 책을 읽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직접 확인하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또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더 평화적이고, 시위라기보다는 콘서트장에 온 것 같다"고 밝혔다.

과거 대학에서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를 부르며 시위했던 한 교사도 '축제 같은 시위'에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86(80년대 학번ㆍ60년대 출생) 운동권'이었던 교사 장 모 씨(54)는 "과거에는 비장한 가사의 민중가요를 부르며 투쟁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진지함만 있었다"며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즐기는 이대생들 모습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신선하고 뭉클했다"고 말했다. 

또 "최루탄을 맞고 짱돌을 던지며 전경들과 싸웠던 과거 방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이번 이대 시위를 기점으로 시위 패러다임이 바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방식의 시위가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해 점거농성을 했던 이한빛 당시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은 6일 "이대에 '다만세'가 있다면 서울대에도 '본부스탁 락페스티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 시위, 졸업생들의 후원금 모금, 도시락 배달 등도 5년 전 서울대에 존재했던 방식이다. 당시는 지금보다 SNS 영향력이 적어 사회적으로 덜 알려졌을 뿐"이라고 했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 시위 당시 학생들이 만든 '총장실 프리덤' 뮤직비디오/ 유튜브, inmiracle12

이한빛 씨는 5년 전 서울대 본부 점거와 이번 이대 본부 점거의 가장 큰 차이를 '연대'로 꼽았다. 이대생들은 "어떤 단체와의 연대도 없이 이대 학생들만의 활동으로 유지하겠다"며 외부인 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이 씨는 "당시 서울대는 이대와 달리 총학생회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비상총회를 주도하고 본부를 점거하면서 '열린 투쟁' 형태를 가졌다. 그러나 목표하던 바를 이루지 못 했다"며 "이대는 시민사회 연대를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오히려 근래 한국 시민사회가 잊고 지냈던 '투쟁 승리'의 경험을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외부세력을 끌어들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이대 투쟁이 정말로 '순수'했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연대를 통해 승리할 수 있다'는 슬로건이 무참히 짓밟혀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을지는 의문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대 시위가 새로운 시위 모델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9일 "이번 시위는 외부 세력과 연대하지 않았고, 총학생회 같은 조직화된 세력이 주도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탈 중심적인 느슨한 성격의 시위였다"고 말했다. 이어 "데모송이 아닌 대중가요를 불러 세대가 바뀌면서 집단행동 방식도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과거 시위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측면이 있으며 소수 엘리트 중심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더 민주적이고 덜 과격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이대 시위가 새로운 시위 문화 모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교수는 연대를 하지 않는 시위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화여대는 특수한 사례다. 시위 대상과 명분이 뚜렷했다. 이 때문에 외부세력과 연대 없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위 대상이 광범위하고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상반될 때는 재학생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연대를 거부한 '이대 모델'이 앞으로 모든 시위에 적용된다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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