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묘역 설계 건축가 승효상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혁명가"

2016-12-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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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위키트리 "지식인은 경계 밖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내놓는 자입니다. 관습적 논리에 반

이하 위키트리

"지식인은 경계 밖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내놓는 자입니다. 관습적 논리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죠. 가만히 멈춰있지 않고 움직이며 나아가는 사람이 지식인입니다. 르 코르뷔지에를 두고, 어떤 사람은 화가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건축가라 칭합니다. 저는 르 코르뷔지에가 20세기 최고 지식인이라 생각합니다."

승효상(64) 건축가 겸 이로재 대표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 전시를 호평했다.

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컨퍼런스 홀에서는 승효상 건축가 강연 '르 코르뷔지에 오디세이'가 열렸다. 승효상 건축가는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 묘역 설계자로, 국내 건축 권위자로 손꼽힌다. 승효상 건축가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건축 아버지 : 르 코르뷔지에 전'을 "아주 훌륭한 전시"라며 극찬했다.

승효상 건축가는 "(이번 전시는) 나도 처음 보는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르 코르뷔지에 미공개작 140여 점을 포함한 총 500여 점이 예술의전당에 왔다. '현대건축 아버지 : 르 코르뷔지에 전'은 지난 7월 르 코르뷔지에 작품 17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래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전시다.

이날 강연에서 승효상 건축가는 "20세기를 사는 우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위대한 정신 속에 있다"며 "르 코르뷔지에 덕에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승효상 대표는 르 코르뷔지에를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1955~2011)와 비교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21세기 혁명가라면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혁명가"라고 말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스티브 잡스는 21세기를 바꾼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통해) 정보 권력을 평준화시키는 데 기여했어요. 르 코르뷔지에 역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건축 혁신을 이루었지요. 둘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자기 자신을 경계 밖으로 꺼낼 줄 알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보세요. 청바지 입고 셔츠 입고 설명하잖아요. 대중 앞에 그렇게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혁신적인 관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런 시도는 하기 힘들지요. 근데 그런 사람들은 또 빨리 죽어요. (웃음) 기존 제도나 환경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 (남들에겐 귀중하지만) 자기 자신은 굉장히 외롭고 쓸쓸해요. 비난도 많이 듣고요."

승효상 대표가 르 코르뷔지에를 '혁명가'라 부른 것은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건물이 과거 건축 방식을 넘어 현대적이고 새로운 원칙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는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됐고, 도처에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때 르 코르뷔지에는 시대적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1945)이 대표적인 예다.

1945년은 유럽 사람 대다수가 주택난에 시달리던 때였다. 당시 도시계획부 장관 라울 도트리(Raoul Dautry)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대규모 공동주택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지은 건물이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큰 주거 건물'이라는 뜻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 (1945) / 이하 르 코르뷔지에 재단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1층 8m 위로 들어 올려주는 필로티(Pilotis) 구조로 설계됐다. 덕분에 거주민들은 지면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옥상 테라스는 여가 공간으로 사용됐으며, 8층과 9층은 상업지역으로 쓰였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가 창안한 '현대건축 5원칙'과 연결된다.

요즘 사람들 관점에서 '주상복합 건물' 정도로 생각될 수 있는 건축이지만, 당시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런 시도를 했던 건축가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르 코르뷔지에가 제시한 '공동 주택' 개념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아파트를 비교했다.

"우리나라 도시에서 아파트는 문제가 많은 풍경입니다. 산처럼 떠 있는 아파트들이 도시 미관과 도시 조직을 붕괴시키죠. 정부가 민간 건설업체에 특혜를 주고 개발하라고 등을 떠민 바람에 줄줄이 성채를 쌓은 겁니다. 우리는 아파트를 보고 '공동주택'이라고 하는데 법적으로는 공동일 수 있지만 실은 그냥 배타적인 공동체거든요. 아파트로 들어가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통과해 집까지 가는 내내 옆집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죠. 집에 들어간 이후에도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부모와 만날 필요가 없고요. 아파트는 그렇게 철저히 구획되고 단절된 곳이에요.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 건축 세계는 그렇지 않아요.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충만했던 건축가입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통해 인간들이 서로를 아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습니다."

승효상 건축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빠져 있으면 좋은 건축가라 부를 수 없다"며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보면 치수가 항상 친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르 코르뷔지에가 여생을 보낸 '카바농(오두막)'은 4평밖에 되지 않는데도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는 그가 고안해낸 '모듈러' 영향이 크다.

르 코르뷔지에는 "최소 공간에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했고,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 '몸'을 토대로 삼았다. 인간이 팔을 들어 올린 높이가 르 코르뷔지에 건축에서 핵심이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에도 신장 183cm 남성을 기준으로 팔을 들어 올린 높이 226cm를 도출해낸 모듈러 다이어그램이 적용됐다.

모듈러

'인간에 대한 애정'이 좋은 건축가를 판가름하는 지표라 말한 승효상 건축가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하며 "자신을 추방한 노무현 삶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2011년 5월 중앙일보는 승효상 건축가가 에드워드 사이드 책 구절을 언급하며 "지식인은 자신을 경계 밖으로 추방하여, 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고, 모험적 용기와 대담성에, 변화를 재현하는 것에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는 자"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승효상 건축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바로 그런 '지식인'으로 규정했다. 매체에 따르면 승효상 건축가는 "노무현은 친숙함이라는 가치에 계속 반기를 들고, 스스로 낯설어함으로써 따지고 되묻고, 옳으면 실천하고 아니면 반기를 드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추방한 노무현의 삶 … 묘에 그걸 담았다”
승효상 건축가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내린 평가와 르 코르뷔지에, 스티브 잡스에 대해 내린 평가에는 유사성이 있다. 그는 "자신을 경계 밖으로 추방하고, 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기존 제도나 전통과 싸우며 자신을 변두리로 밀어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는 그걸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이번 '현대건축 아버지 : 르 코르뷔지에 전' 역시 그런 점에 착안하여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 가졌던 혁신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에 주력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건축가'이면서도 '화가'인 르 코르뷔지에를 만날 기회다. 건축 모형 이외에, 그가 그린 그림과 조각, 태피스트리 등 수많은 작품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화가'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가 그린 초창기 회화들은 훗날 그가 설계한 건축에서 중요한 예술적 토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현대건축 아버지 : 르 코르뷔지에'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