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0년 마광수 "낮과밤 다른 성문화 바뀐 것 없어"

2017-01-03 19:20

add remove print link

1992년 구속된 마광수 전 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1992년 구속된 마광수 전 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야지, 자꾸만 쉬쉬하고 낮과 밤이 다르고 이중적이고 그러다보니까 더 꼬이는 거죠."

'광마'(狂馬) 마광수(66)가 연세대 교수 재직 중 소설 '즐거운 사라'로 구속된 게 벌써 24년 전 일이다. 서른한 살에 교수직을 얻고 윤동주 연구로 국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필화 사건 이후 생활은 암울했다.

해직과 복직·휴직을 반복한 연세대에서 지난해 8월 정년퇴임했다. 원로 학자 대우는커녕 한 번 '잘리는' 바람에 흔한 명예교수 직함도 달지 못했다. 사면·복권을 받고 돌아간 학교에서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 때문에 얻은 우울증을 아직도 달고 산다. 지금은 "누가 불러주질 않아" 그냥 집에서 지낸다. 그는 짧은 통화에서 "우울하다", "서운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많은 것을 잃어가며 맞섰던 한국사회의 위선적 성문화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에게 묻자 "별로 없다. 성 문학이 나오는 것도 없지 않느냐. 이제 할 말은 웬만큼 다 했다"고 답했다. '제2의 마광수'가 없다는 얘기다. 성을 주제로 한 글은 더이상 안 쓰기로 했다.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은 마 전 교수가 최근 시선집 '마광수 시선'(페이퍼로드)을 냈다. '광마집'(1980)부터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2012)까지 시집 여섯 권에서 고른 작품들과 새로 쓴 10여 편을 합해 119편을 묶었다.

그는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등단작은 시였다. 1977년 현대문학에 그를 추천한 사람이 '청록파' 박두진이다. "내가 원래 시로 문학을 시작했다. 시적 아이디어를 소설로 쓰거나 시를 책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나에게 시는 고향이나 다름없다."

1989년 펴낸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그보다 10년 전 쓴 동명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다.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부분)

그는 '자기검열' 때문에 성을 다룬 작품의 비중을 많이 줄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솔직한 표현들이 차라리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이듦에 관해 말할 때도 여지없이 성적 욕망을 잣대로 들이댄다.

"사랑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때도 있었는데/ 섹스 말고는 아무런 즐거움이 없었던 때도 있었는데// 섹스로 풀기 보다 글로 풀어대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나 글로 푸는 것이 섹스보다 더 즐거운 건 아니고)" ('서글픈 중년' 부분)

"한국에서 살기는 너무나 힘들어/ 뭘 해도 안 되고 뭘 안 해도 안돼/ (…) 너무 앞서가도 안 되고 너무 뒷서가도 안 돼/ 너무 섹시해도 안 되고 너무 안 섹시해도 안돼"('한국에서 살기' 부분) 20년 넘게 쌓인 억울함의 자조적 표현이다. 그래도 그는 천당에 가고 싶진 않다고 썼다. 너무 밝고 밤이 없어서다. "그러면 달도 없을 거고/ 달밤의 키스도 없을 거고/ 달밤의 섹스도 없겠지/ 나는 천당 가기 싫어" ('서시' 부분)

home 연합뉴스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