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알바 4년 연속 1위’ 인형탈 알바 직접 해봤다
2017-07-0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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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탈 알바’는 쉽지 않은 아르바이트다.

‘인형탈 알바’는 쉽지 않은 아르바이트다. 지난달 12일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알바생 9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형탈 아르바이트'는 여름철 최고의 극한 알바(40.4%)로 꼽혔다.
위키트리 기자 2명이 기온이 가장 높다는 낮 12시부터 5시까지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고양이탈 알바를 체험해봤다. 명동 거리 명물이라는 '고양이 인형'으로 변신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쯤 서울 명동역 5번 출구 인근에 있는 고양이 카페 ‘고양이 놀이터‘를 찾았다. 이곳은 카페 홍보를 위해 5년 간 인형탈 알바를 고용해왔다.
직원들 안내를 받고 탈의실에 들어서서 인형탈을 처음 만났다. 노란 털을 가진 귀여운 고양이 모양 털옷이었다. 머리탈은 한 손으로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크기였다. 내 머리통 5배는 돼 보였다.
땀 흘림을 줄이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머리탈을 썼다. 늘 궁금했던 '시야 확보'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고양이 눈이 있는 자리가 모기장 같은 그물 재질로 돼 있었다. 처음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 얼굴이 구분될 정도로 적응이 됐다.
전단지와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크로스백을 메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고양이 카페’라 적혀있는 플라스틱판을 어깨에 두르자 준비가 끝났다. 옷과 탈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하지만 이것저것 얹고 나자 3kg 가까이 되는 무게가 내 몸에 더해져 있었다. 이제 출근 준비 완료.
정오를 맞은 명동은 많은 인파로 활기를 띠었다. 불편한 걸음을 옮기며 밖으로 나왔다. 약간 어색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한 마리의 ‘애교 많은 고양이’가 돼 손님을 끌어모아야 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5번 출구가 있는 초입에서 을지로 방향으로 향하는 손님이 타깃이다.
가볍게 손 흔들기로 시작했다. 인형탈을 쓰니 없던 용기도 생겼다. 손님들 시선을 강탈하기 위해 과장된 몸짓으로 친근한 척했다. 또 함께 인증샷을 찍자고 하면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했다. 고양이 카페 위치를 묻는 손님들을 입구 앞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한 건 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복병은 역시 ‘더위’였다. 낮 기온은 30도였지만 털옷에 인형탈까지 쓴 터라 체감온도는 35도를 웃돌았다.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임에도 목과 가슴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너무 더워서 춤이 절로 나왔다. 인형옷을 펄럭이며 춤을 춰야 옷 속으로 바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입은 고양이탈은 인간적인(?) 차림이었다. 명동 길거리서 마주친 '강아지 카페' 인형탈 알바는 두꺼운 장갑을 꼈다. '모 화장품' 인형탈 알바는 두툼한 전용 신발에 흰색 장갑까지 차려 입었다.
한 시간 반 정도 일하고 더위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쉬는 시간이 됐다. 기쁜 마음으로 카페로 복귀해 옷을 갈아입었다. 무료로 준 음료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거울에는 땀에 전 내가 서 있었다. 세상엔 쉬운 일은 없다는 말을 다시 절감했다.
쉬는 시간 20분이 훌쩍 지나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들만 만났던 초반과 달리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큰 인형탈을 착용한 채로 길 한가운데에 서있을 수는 없었다.
가게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금세 직원이 "여기 앞에서 하시면 안 된다"며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상권 다툼이 치열하다 보니 상인들은 '자리'에 매우 민감했다. 오후 4시 정도가 되니 길 한가운데로 포장마차들이 들어섰다. 몸을 운신할 폭은 더욱 줄어들었다. 자리를 잡아 몸을 움직이려고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 포장마차 주인은 "고양이, 비키라고"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경험이 많은 다른 인형탈 아르바이트가 "잘 못 하면 욕먹는다"며 고양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알바가 덜 힘들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지나가던 시민들 때문이었다. 한 할머니는 "아이고 더운 날 고생이 많다"며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어떤 학생들은 내 옆에 서서 부채질을 해주기도 했다. 특히 외국인과 어린아이는 인형탈을 좋아했다. 멀리서부터 인형탈을 보기 위해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같이 사진 찍자고 하는 외국인도 많았다.
오후 5시, 알바가 드디어 끝났다. 오늘 하루는 그렇다치고 이 일을 며칠, 몇달 계속 할 수 있을까. 이 알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기자가 체험했던 고양이 인형탈 알바 전임자는 무려 1년 8개월이나 이 일을 했다고 한다.
명동역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인형탈 알바생 변유림(여· 20)씨는 인형탈 알바를 한 번쯤 해볼 만 한 일이라고 했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변 씨는 인형탈 알바를 위해 서울 명동까지 두 시간을 꼬박 달려온다고 했다. 그는 "한여름에는 더우니까 힘들긴 하죠.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재밌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고양이탈 알바를 체험하게 해줬던 '고양이 카페' 사장 박예진(35) 씨는 "누구에겐 극한 알바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겐 아니다”라며 "이 알바를 하면서 나름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극한 알바'로 비춰지는 통에 알바생들이 안쓰럽다는 항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 이 기사는 박송이 기자와 오세림 기자가 함께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