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실험당했다” 조회수 1억2천만 돌파한 나치 피해자 충격 증언 (영상)
2017-10-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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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전범에게 생체 실험을 당했던 여성이 한 충격적인 증언이 소셜미디어를 뒤흔들었다.
"'반드시 살아야 해, 살아남아야 해'라고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전범에게 생체 실험을 당했던 여성이 한 충격적인 증언이 소셜미디어를 뒤흔들었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멩겔레 트윈(Mengele twin)'으로 살았던 에바 모제스 쾨르(Eva Mozes Kor·83) 인터뷰 영상을 지난달 27일 공개했다. 조회수는 2일 오후 기준 1억 2000만을 돌파했다.
Brave And Tragic: A Story Of Being One Of The Mengele Twins In...the power to live and forgive.
BuzzFeed Video에 의해 게시 됨 2017년 9월 26일 화요일
멩겔레 트윈은 나치 친위대 의사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 이름을 따 만들어진 단어다. 생체 실험에 동원됐던 유대인 쌍둥이를 가리킨다. 멩겔레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유전학, 특히 쌍둥이에 대해 연구했다.
쾨르에 따르면 그와 쌍둥이 자매는 1944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자매 나이 10살 때였다. 낯선 곳에 당황한 쾨르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아빠와 두 언니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쾨르와 쌍둥이 자매는 살기 위해 엄마를 붙잡았다.
이때 한 나치 군인이 다가와 쾨르 엄마에게 자매가 쌍둥이냐고 물었다. 엄마가 "그렇다"고 답하자마자 다른 군인이 달려와 자매와 엄마를 갈라놨다. 이후 자매는 가족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쾨르는 "심지어 작별인사도 못 했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절망 속에서 끌려가는 엄마였다"며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쌍둥이 자매는 기차 가축 운반 칸에 태워져 다른 수용소로 옮겨졌다. 자매는 2가지 생체실험에 동원됐다. 월, 수, 금요일에는 나체 상태로 하루 여덟시간 이상 신체 모든 부분을 점검받았다. 화, 목, 토요일에는 혈액 실험을 당했다.
쾨르는 "그들은 내 팔 양쪽을 모두 꽉 묶고 약물을 주입했다. 최소 5가지 다른 종류였다"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혈액 실험을 받은 어느 날, 쾨르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팔과 다리가 부어올랐으며 고열에 시달렸다. 그는 이튿날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멩겔라와 함께 온 의사 4명 중 한 명은 "상태가 너무 안 좋아. 2주 안에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 진찰도 하지 않고 쾨르를 방치했다.
쾨르는 "2주 동안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은 얼룩진 병실 바닥"이라며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 있는 동안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라고 되뇌었다"며 "의사가 말한 2주 뒤 점차 몸이 나아졌고 다시 3주 뒤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퇴원한 쾨르가 다시 수용소로 돌아왔을 때 쌍둥이 자매는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쾨르가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었지만 자매는 "나는 절대 얘기할 수 없어. 앞으로도 얘기 못할 거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쾨르는 1945년 1월 12일 소련군에 의해 자유가 된 후에야 다시 물었다. 쌍둥이 자매는 "네가 병원에 있는 동안 24시간 내내 멩겔라가 수없이 많은 약물을 주입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쾨르 쌍둥이 자매는 신장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투병 생활을 했다. 의사가 여러 항생제를 처방해도 소용없었다. 쾨르가 한쪽 신장을 기증해 이식받은 뒤에도 상태는 더 악화됐다. 결국 자매는 1993년 6월 숨을 거뒀다. 의사는 자매 신장이 "10살 이후로 전혀 자라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쾨르는 2015년 독일에서 열린 나치 전범 재판에 증언자로 나섰다. 30만 명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아우슈비츠 경비원 재판이었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쾨르는 이날 재판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지는 것에 감사하다"며 경비원에게 다가갔다. 경비원은 쾨르 뺨에 키스한 뒤 그를 껴안았다.
이후 쾨르는 경비원과 손잡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학살이 벌어진 70년 후에 만난 두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의가 담긴 행동을 분노때문에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를 용서했다"고 덧붙였다.
Today after the afternoon session of the court, I went up to Oskar Groening. He wanted to stand up. I said, "Please don'...
Eva Mozes Kor에 의해 게시 됨 2015년 4월 23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