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단 주먹” 심부름센터 찾아가 '해결' 의뢰하는 학교 폭력 피해자들

2017-10-30 16:30

add remove print link

학부모들은 “슬픈 현실이지만 학교나 경찰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부름센터에 학교폭력 해결을 의뢰하면 '동행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심부름센터와 통화를 토대로 각색된 대화 내용) / 위키트리
심부름센터에 학교폭력 해결을 의뢰하면 '동행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심부름센터와 통화를 토대로 각색된 대화 내용) / 위키트리

지난 여름, 중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남·50)씨는 아들에게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화가 난 박 씨는 학교를 찾아 담당교사와 가해 학생들을 직접 만났다. 소용이 없었다.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부모님한테 고자질했다는 게 이유였다.

박 씨는 '심부름센터'로 불리는 흥신소에 해결을 의뢰했다. 비용은 1주일에 400만 원이 넘었다. 박 씨는 "가격이 부담됐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직원 말에 바로 결정했다"고 했다.

아들이 외출할 때마다 덩치 좋은 흥신소 직원들이 따라다녔다. 가해자들이 흥신소 직원들과 몇 번 마주친 뒤로는 더 이상 박 씨 아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학교 폭력 피해자 부모들이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명 '동행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동행 서비스'란 심부름센터 남성 직원들이 피해 학생과 며칠 동안 함께 다니며 가해 학생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심부름센터 남성 직원들은 피해 학생 '친척'이나 '삼촌'으로 둔갑한다. 가해 학생들을 만나 "다시 한번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협박한다.

보통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하지는 않는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A 심부름센터는 "폭력을 휘둘렀다가는 일이 커질 수 있다"며 "적당히 겁을 주는 수준에서 멈춘다"고 했다. 실제 폭력을 휘두르지만 않으면 신고로 이어지지 않아 '뒤탈'도 없다는 것이다.

심부름센터들에 따르면, '위협'으로도 가해 학생들은 겁을 먹는다. A 심부름센터 직원은 "우리가 비쩍 곯은 애들 보내는 것도 아니고 덩치 있고 온몸에 문신 있는 애들 3명 정도 보낸다. 가해 학생들이 다시는 안 괴롭힌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B 심부름센터 직원은 "우락부락한 친구 2명 정도 붙여서 학교나 학원 갈 때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데 당연히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어 "물론 효과가 일시적일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심부름센터는 학교폭력 문제에 직접 개입해 가해자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소송에 도움이 되는 폭행 관련 정보를 수집해준다. / shutterstock
심부름센터는 학교폭력 문제에 직접 개입해 가해자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소송에 도움이 되는 폭행 관련 정보를 수집해준다. / shutterstock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C 심부름센터는 "흥신소 일은 가격이 정해져있지 않다. 솔직히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C 심부름센터에 따르면 가격은 동행 인원, 횟수에 따라 매겨진다. A 심부름센터는 1회에 100만 원을 B 심부름센터는 1주일 기준 300만 원을 불렀다. B 심부름센터는 "열흘 하면 400만 원까지 해드린다"고 전했다.

가해 학생에게 겁을 주라는 의뢰는 적지 않게 들어온다. A 업체는 "한 달에 5~10건은 들어온다"고 밝혔다. B 업체는 "많지는 않지만 종종 문의가 온다"고 했고 C 업체는 "이런 문의를 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도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흥신소를 찾는 문의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네이버 지식in
온라인상에서도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흥신소를 찾는 문의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네이버 지식in

학부모들 사이에서 '동행 서비스'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해결책으로 통한다. 학부모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이가 괴롭힘을 당해 심부름센터에 의뢰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가해 학생을 협박하는 방식의 해결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는 부모들이 많다. 학부모들은 "슬픈 현실이지만 학교나 경찰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우리 아이가 심부름센터 직원한테 협박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간간이 나오지만 다른 학부모들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학교 폭력을 둘러싼 학부모들간 갈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 속 장면 / tvN '부암동 복수자들'
학교 폭력을 둘러싼 학부모들간 갈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 속 장면 / tvN '부암동 복수자들'

중학생 아들을 둔 김정화(여·46) 씨는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다. 학교에 신고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도 열렸지만 미온적으로 대처해 오히려 상처만 커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학교도 경찰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심부름센터를 알아봤다. 이건 아니다 싶어 심부름센터 직원을 고용하지는 않았지만 부모가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토로했다. 이어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따지며 부모를 비판할 게 아니라 학교 폭력에 대처하는 학교, 교육당국, 경찰을 탓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학폭위'를 불신한다. 학폭위 처분에 불복해 피해ㆍ가해학생 측이 교육청 등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도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재심 청구 건수는 2012년 572건에서 2014년에는 901건, 2016년에는 1299건으로 증가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육청 별 학폭위 처분 관련 소송 현황'을 보면 학교 등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2012년 50건에서 2015년 109건으로 3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학교에 대한 불신이 깊다 보니 학부모들이 해결책을 학교 밖에서 찾는 것이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학폭위가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전재수 의원은 "(학폭위가) 누구도 승복할 수 없고,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급기야 학교폭력 심부름센터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shutterstock
shutterstock

상황이 이렇지만 교육부와 경찰은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심부름센터에 의뢰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협박'을 받은 가해 학생들은 보통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부 학교폭력대책과 관계자는 "실제로 심부름센터를 동원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면 이건 명백한 학교폭력 사안"이라며 "겁을 주는 것만으로도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교육당국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학교폭력과 관련해 공정성, 객관성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학교 폭력 문제는 꼭 학교, 경찰을 통해 해결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도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건 엄연히 처벌 대상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흥신소 직원들이 나타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경범죄 처벌을 고려해볼 수 있다. 만약 물리적 '위협'으로 이어지면 협박, 상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의뢰인도 경우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박수정, 윤희정 기자가 함께 썼습니다.

home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