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패럴림픽 최정화 미술감독 “자코메티는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2018-03-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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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작가 철학은 조각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닮은 구석이 많다.

평창 패럴림픽에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설치미술가 최정화(56) 작가가 자코메티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최정화 작가는 지난 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자코메티전에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1시간 가량 강연을 열었다. 이날 최정화 작가는 지금까지 작업해 온 작품들을 소개하며 각 작품에 담긴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최정화 작가는 종종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물건을 모아 재료로 삼는다. 그는 "제가 하는 일은 그냥 산책 다니며 물건을 줍는 것"이라며 "성남 모란시장을 제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최정화 작가는 작품을 통해 "쓰레기와 유물의 차이, 제품과 작품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다. 흔한 플라스틱 소쿠리를 모아 피라미드를 만드는가 하면 온갖 그릇들 뚜껑들만 모아 놀이터를 꾸미기도 한다. 각종 쇼핑백으로 헬싱키 광장에 거대한 물고기들을 만들어내고, 총을 모아 꽃으로 피워낸다.



최정화 작가는 "모든 것이 예술이고,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소통이라고 믿는다. 대학 시절 전공했던 서양화를 때려친 이유도 "남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함께 만드는 것에서 감흥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설계한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행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둥근 모양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둥근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동선을 짜고 원들이 계속 겹쳐지면서 하나의 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에너지, 물질적 에너지가 있다. 절대 설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최정화 작가의 철학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1966)와 닮은 구석이 많다. 자코메티는 인간 본질을 시선에서 찾고, 조각에 영혼을 불어넣어 보편적 인간상을 만들고자 했다. 최정화 작가는 일상 속 물건에서 보편적 우리네 삶을 찾아내려 한다. 최정화 작가는 "나를 확인하고 너를 주장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예술가가 지향해야 할 점이라고 밝힌다.

덧없고 하찮은 존재에게도 삶은 가치 있다는 실존주의적 인식마저 비슷하다. 자코메티는 스무 살 되던 해 같이 기차여행하던 노신사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큰 충격을 받는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 자코메티는 현대인의 불안과 상처, 고독을 조각에 표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죽는 순간 인간은 바로 사람이 아닌 '사물'이 되어버렸다. 그날 한 순간에 나의 일생이 변해 버렸고, 모든 것이 덧없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바로 알아차려 버렸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

최정화 작가는 하찮게 보이는 물건들을 모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눈이 부시게 하찮은"이라는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하찮은 일상으로 구성된 삶이야말로 눈부시도록 빛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음은 최정화 작가와 일문일답이다.
Q. 선생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작업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인가?
A. 여태까지 예술이 너무 멀리 있고 높이 있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니었나. 모두를 위한 게 무엇이 있을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모두의 모두를 위한 모두의 것이 예술이다.
Q. 자코메티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한다. 자코메티 전시 어땠는지 소감 부탁드린다.
A. 현대미술이든 고대미술이든 박물관에 있는 것이든 진짜 좋은 작품들은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자코메티는 '인간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역사가 무엇인가, 물질이 무엇인가' 모든 질문을 던지고 있다.
Q.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A. 역시 '걸어가는 사람'. 자코메티 작품 원래 좋아하기도 했고, 대학교 때는 영향도 많이 받았다.
Q. 어떤 점이 가장 맘에 들었나?
A. 바로 그거다.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느껴라, 통하였느냐.'
Q. 철학적이어서 사실 바로 와닿진 않는다.
A. 그냥 그렇게 쓰면 된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교통이라는 것도 소통이라는 것도 다 통이다. 통(通)하면 아프지 않다. 아플 통(痛) 자가 있고 통할 통(通)이 있다. 통과 통의 통통.
자코메티는 모든 종류 인간을 다 포용한다.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든 인간에게 알맞은 질문을 던지고 알맞은 답을 만들어 준다. 그 점이 가장 훌륭한 점이다.
Q. 우리에게 왜, 지금 자코메티가 필요한지 질문한다면?
A. 지금뿐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다. 공통된 질문이지만 답은 달라지는 작품이다. 시대별로 변하는 통증을 알려준다. '인간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어떻게 살아야 되고.'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Q. 선생님께서도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을 하고 계시나?
A.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고 있다. 저도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 수없이 많은 방법을 겪어보자' 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삶, 작품들은 만족스러우신지?
A. 만족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앞으로를 위해 산다. 어떤 작품이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앞으로 할 작품'이라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