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는 비행기 타면 방사선에 피폭?” 논란 중인 '우주방사선'
2018-10-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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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행 비행기를 왕복 13번 타면 일상생활에서 쐬는 방사선 1년 치 넘어서
"방사선에 노출됐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총알이 우리 몸을 뚫고 지나간 것"

"비행기 탈 때 북극항로 지나면 방사선 피폭된대요", "특정 지역 상공 지나갈 때 우주방사선 많이 나옴. 머리 아프고 속 메슥거리는 증상 있다고 함"
최근 전직 대한항공 승무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우주방사선에 의한 백혈병 산재'를 신청하며 사회적인 파장이 일었다. A씨는 승무원으로 6년간 북극항로를 다니며 우주방사선에 피폭된 게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이 이슈화되며 비행기 탑승과 방사선 노출 연관 관계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온라인에서는 방사선 노출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면서 이용자들 사이에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했다.

'방사선'은 불안정한 원자핵이 안정한 원자핵으로 변환될 때 방출되는, 인체에 해로운 X선을 말한다. 그중 지구 밖에서 오는 방사선을 '우주방사선'으로 분류하는데, 비행기를 타고 상공으로 올라가게 되면 이 우주방사선에 노출된다.
방사선 노출량은 고도, 위도가 높을수록 증가한다. 국내에서 방사선 노출 위험이 가장 높은 항로는 미주노선을 오갈 때 이용하는 '북극항로'로 알려져 있다. 북극은 지구 자기장이 강해 지구 외부에서 오는 입자 유입이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메이저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2000년대 후반부터 미주노선에 북극 항로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실제 이 북극항로를 이용할 때 승객들이 방사선에 노출되는 양은 어느 정도일까? 기자는 지난달 14일 미국 뉴욕에서 한국 인천으로 돌아오는 국내 항공기를 탔다. 14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북극항로' 비행을 직접 체험했다.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결과, 기자가 이날 북극항로를 14시간 비행하며 쐰 누적 방사선량은 119.29 μSv(마이크로시버트)였다. mSv(밀리시버트)로 환산할 경우 0.1 정도였다.
평소 지상에서 일상생활 중 쐬는 방사선 양이 1년 동안 2.5∼2.95 mSv라는 걸 감안할 때 단시간 내에 꽤 많은 방사선을 쐰 셈이었다. 뉴욕행 비행기를 왕복 13번 타면 일상생활에서 쐬는 방사선 1년 치를 넘어선다.
또 주목할만한 점은 국내에서 미국 뉴욕으로 출국할 때 이용한 캄차카 항로가 오히려 북극항로보다 누적 방사선량이 조금 더 높았다는 점이었다. 비행시간은 비슷했지만, 방사선량은 북극항로 이용 시보다 16.93μSv 더 높았다. 실제 미국연방항공청(FAA)은 북극항로 비행 시 노출되는 방사선량이 다른 항로들과 비슷하다는 실측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SNS 괴담에 등장하는 '북극항로' 자체가 아닌, 비행기를 타면 노출되는 '누적 방사선량'이었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주영수 교수는 "방사선에 노출됐다는 건 쉽게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총알이 우리 몸을 뚫고 지나간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방사선은 세포핵 안에 있는 DNA에 영향을 주는데, 방사선에 노출되면 이 DNA 고리가 끊어지거나 변형될 수 있다"며 "비행기를 탔을 때 환경처럼 오랫동안 방사선에 노출되면 세포에 더 많은 데미지를 주게 되고, 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실제 2006년 미국 전미연구평의회(NRC)는 '베어 7(BEIR VII) 보고서'에서 "방사선 노출량이 '0'일 때 이후에는 노출량과 암 발생률이 직선적으로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 교수는 "0.1mSv 방사선에 노출됐을 때는 10만 명 중에 1명이 암에 걸릴 수 있고, 10mSv 방사선에 노출됐을 때는 1000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라며 방사선 노출 위험성을 경고했다.
모 항공사 4년 차 승무원으로 재직 중인 김모 씨는 "승무원들도 매년 안전교육에서 '북극항로'에 대한 교육을 받긴 하지만 약식에 불과하다"며 "회사에서 방사선량 상한선을 두고 관리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좀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만약 비행 중 컨디션이 안 좋아지더라도 방사선 영향인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직원들이 나서서 알아보기 전에 회사가 노출 방사선량을 고지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영수 교수는 "여행뿐 아니라, 엑스레이 촬영과 CT 촬영 등 일상생활에서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며 "현재로서는 최대한 방사선 노출 환경을 피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