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은 왜 ‘변절자’ ‘배신자’라는 비판을 듣는 것일까, 억울한 점은 없는 것일까
2019-05-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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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집회서 후퇴 결정한 이른바 ‘서울역 회군’ 사태의 장본인 중 한명
유시민 “서울역 회군이 오로지 심재철 책임인 것처럼 과대하게 비난한다”
15일자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로 인해 20여년 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피해자)로 인정돼 정부 보상금을 지급받은 사실이 확인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이날 경향신문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해왔던 심 의원은 정작 자신이 5·18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심 의원은 1998년 광주시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신청’을 한 뒤 심사를 거쳐 ‘연행·구금’ 분야 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 3500만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하고도 정작 자신이 5·18 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 의원의 처신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데 심 의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민주화운동을 경력을 갖고 있는 그가 왜 범진보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란 비판을 받고 있는지, 그에게 변절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게 과연 적절한지 궁금할 수도 있다.
심 의원은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이었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지만, 10만여명의 시민이 집결한 서울역 집회에서 후퇴를 결정한 이른바 ‘서울역 회군’ 사태의 장본인 중 한 명이다.
당시 심 의원을 비롯한 총학생회 대표들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인들과 충돌하면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해산 후 재집결’로 의견을 모았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서울역 회군’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산 이틀 뒤인 5월 17일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군부대를 동원해 광주에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때문이다.
심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당하고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교사에 임용돼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 1988년 MBC 보도국에 입사해 기자로 직업을 바꿨다. 이후 1996년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75학번인 양민호 한반도광물자원연구센터 이사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심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붙였다.
“심재철이 어떻게 1980년대초에 MBC에 기자로 입사하게 되었는지 그것부터 미스터리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소위 학생운동 등 민주화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 중에 방송사나 신문사 등 언론사에 취직한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신원조회에서 탈락했다. 심재철이 그런 공영 방송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때 이미 전두환 신군부에게 투항해 본인의 좌표를 정하고 제 갈 길을 갔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심재철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김대중에게 돈 받았다고 허위진술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호남 출신인 심재철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김대중 총재의 민주당으로 가지 못하고 호남인들이 아직까지도 그토록 혐오하는 반대 정당에 들어간 것도 김대중 총재에 대한 미안함과 거기서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으로 나는 추정하고 있다. 심재철은 그런 배신자의 추악한 표상일 뿐이다.”
그를 이렇게 변절자로 몰아세우는 게 과연 적절할까. ‘김용민의 뉴스브리핑’이 2017년 12월 21일 내보낸 정정보도문을 보면 변절자란 낙인이 심 의원으로선 크게 억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확인 결과 당시 24인의 피의자 대부분이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하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500만 원을 받았다고 허위 자백한 사람은 심 의원이 아니었으며, 심 의원은 공채로 MBC에 입사하였으며 방송사 최초로 노조를 설립하고 초대 전임자를 역임하는 등 전향의 대가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점을 볼 때 위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김용민의 뉴스브리핑’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를 받고 당시 정정보도문을 내보냈다.
서울대 동기로서 심 의원과 함께 학생운동을 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심 의원에게 변절자라는 낙인이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합수부) 수사에 협조했느냐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심 의원에 대해 “안쓰럽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40년 동안 고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변절자라는 낙인이) 본인은 되게 억울했나 보다”라면서 “서울역 회군이 오로지 심 의원 책임인 것처럼 과대하게 비난하는 목소리들도 많았다. 또 한국당에 가서 정치하는 것에 대해서 배신자 프레임으로 비난을 받았다. 본인으로선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