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8월 15일, 경복궁을 가로막던 '조선 총독부' 건물이 철거됐다(+영상)

2019-08-1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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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철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조선총독부 철거 지시'

유튜브, '웃음공작소'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면서 우리 민족은 자유를 되찾았다. 이후 매해 광복절을 기념하며 의미를 되새겼다.

24년 전인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며 조선 총독부 건물을 해체했다.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는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청사와 국회 의사당으로 활용돼 1948년 5월 10일 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 국회를 개의, 같은 해 7월 17일 헌법을 공표한 장소로 사용됐다.

이후 국회가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이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다.

건물의 역사가 있는 만큼 철거 논의가 오가던 당시 정부 내부에서 "건물을 해체한 후 독립기념관 부지로 이전하여 복원하자",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기 때문에 보존의 가치가 있다"며 논란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철거 후 다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복원할 가치가 없다"며 논란을 일축하고 조선총독부 철거와 경복궁 복원사업을 진행했다.

철거가 결정된 후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비용을 지불할 테니 건물을 옮겨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총독부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는 민족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할 수 없다"며 철거를 밀어붙였다.

이와 관련해서 일제강점기에 활동하며 대한민국 고건축을 연구한 후지시마 가이지로 교수는 "지금 조선총독부 청사를 국립박물관으로 쓰고 있다고 들었다"며 "총독부 건물 속에 한국의 반만년 역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스모 선수가 승부에서 지면 상투를 자르듯, 이제라도 그 건물의 상투 부분(돔 부분)을 잘라버려라"라고 말했다.

고의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은 경복궁의 흥례문 권역을 철거한 자리에 지어져 있었다.

광화문과 근정문, 근정전은 일직선에 있어서 왕이 근정전에 앉으면 육조 거리가 보이도록 설계된 경복궁이 조선 총독부 건물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던 것이다.

8월 15일 광복절 오전 9시, 옛 총독부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장에서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은 "우리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 박탈했던 식민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여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국 복원 잡업과 새 문화거리 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라며 해방 50년 만에 이뤄지는 일제 상징의 제거를 호국영령들에게 고하는 고유문을 낭독했다.

조선총독부 철거 사업이 진행된 지 3개월 뒤 일본 에토 다카미 총무청 장관은 "한일합방 당시 한국은 나라의 힘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단행된 것이다"라며 "일본은 한국에 학교도 지어주고 철도도 만들어줬다"며 역사 도발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중국 주석이었던 장쩌민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를 언급하며 "일본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말하며 철거사업에 속도를 높였다.

첨탐 철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지하 보관소로 옮겼다가 중앙청 바로 옆에 있는 구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관 건물로 이전됐다.

이후 1996년 초부터 차근차근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 일제 강점 86년, 건설된 지 70년(건설 시작부터는 80년) 만에 경복궁을 가리고 있던 조선총독부는 완전히 사라졌다.

home 심수현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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