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광고를 보던 대학생이 ‘편지 한 통’을 보내 펩시를 뒤집어놓았다
2021-01-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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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희대의 '펩시 해리어 전투기 사건'
21세 대학생, 광고 허찔러 경품 전투기 요구

1995년 11월 리이벌 코카톨라에 고전하던 펩시콜라는 전대미문의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포인트 교환제인 ‘펩시 포인트(Pepsi Point)’ 제도를 실시한 것이다.
광고 내용은 단순하다.
"펩시 1상자, 즉 24캔을 10포인트로 환산한다. 75포인트를 모으면 티셔츠를, 175포인트를 모으면 색안경(셰이드)을, 1450포인트를 모으면 가죽재킷을 준다. 포인트가 부족하더라도 15포인트 이상 있으면 모자라는 점수는 1포인트당 10센트로 환산해 현금으로 지불할 수도 있다."


이 프로모션이 세간의 관심을 불러온 가장 큰 이유는 1등 상품 때문이었다.
펩시 측은 700만포인트를 모으면 당시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인 맥도넬더글러스(McDonnell Douglas: 1997년 보잉과 합병)가 미 해병대용으로 면허생산 중이던 ‘해리어 수직이착륙기(AV-8 Harrier II)’를 제공하겠다고 선전했다.
실제로 펩시 측은 TV 광고까지 제작했다. TV 광고에서는 한 어린 학생이 해리어 전투기를 몰고 학교에 가서는 "버스보다 훨씬 빠르군!"이라고 말한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두 놀라는 가운데 "700만포인트를 모으면 해리어 전투기를 받을 수 있다"고 자막을 내보내 펩시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미국에서는 퇴역하거나 군에서 운용하지 않는 전투기를 민간인이 구입해 무기 발사와 연관된 모든 시스템을 제거한 뒤에 운용할 수 있다.
당시 해리어 전폭기 초기형은 미합중국 해병대에서 퇴역한 상태니 구매할 수는 있지만, 순수하게 펩시만 들이켜 이 포인트를 채우려면 1680만 캔이 필요하다.
매일 10캔씩 마셔도 무려 4602년하고도 9개월이 더 걸린다. 참고로 지구에서 태양까지 이론적으로 시간당 4km 속도로 걸어가면 약 4270년이 걸린다. 차라리 태양까지 걸어가는 게 더 빠르다는 얘기다.
펩스콜라의 의기양양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몇달 뒤 한 대학생에 허를 찔리면서 펩시 전체가 사달이 났다.
21살의 대학생 경영학도인 존 레너드(John Leonard)는 ‘700만포인트’라는 것이 실제로는 10센트당 1포인트이므로 결국 7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5억6000만원)에 해당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당시 해리어 전투기의 가격은 3300만달러 이상. 시가의 50분의 1로 득템할 수 있는 셈이었다.
그는 투자자를 모아 1996년 3월 콜라 36통(15포인트)과 70만달러 짜리 수표를 펩시로 보내고 해당 전투기를 요구했다.
펩시에서는 단순한 장난으로 알고 돌려보냈는데, 레너드는 수표를 재발송하고 변호사를 통해 어서 해리어를 내놓으라고 독촉했다.
당황한 펩시는 그해 6월 레너드를 상대로 경품 인도 거부 소송을 걸었고, 레너드도 이에 맞서 전투기 인도 계약 불이행, 사기에 따른 위자료 청구까지 덧붙여 맞고소했다.
4년이 걸린 법정 공방은 1999년 레너드의 패소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펩시가 허위광고를 했지만 상식상 전투기를 줘야 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벌써 20년이 넘은 일이지만, 당시 파장이 너무나도 컸기에 여전히 회자되는 사건 중 하나다. 미국 로스쿨 케이스북에 자주 등장하며, 각종 TV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소재로 쓰인다.
판결은 기울어졌지만 윈윈 게임이었다.
레너드는 수표로 보낸 투자금 이상의 위로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고, 펩시도 악영향보다는 노이즈 마케팅의 이득을 봤으니 손해를 본 장사는 아니었다.
이후 펩시는 해리어 전투기의 교환 포인트를 100배 올린 7억 포인트로 상향했다.
드넓은 미국 땅에 700만포인트의 함정을 찾아낸 게 1명 뿐이었다는 사실이 펩시로서는 다행이었다. 수십명이었다면 펩시는 파산했거나, 전투기를 생산하는 회사로 업종변경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