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주근깨 공주' 2시간 동안의 화려한 재능 낭비 (리뷰)

2021-09-2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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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분 동안 펼쳐지는 화려한 시각효과의 향연
이를 따라가지 못 하는 캐릭터, 스토리 아쉬워

볼거리는 확실하다. 하지만 2시간짜리 영화에서 볼 게 화려한 시각효과와 음악 뿐이라면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이하 와이드릴리즈
이하 와이드릴리즈

애니메이션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미래의 미라이' 등 워낙 많은 작품을 흥행시킨 감독인데다 '메타버스'라는 최근 가장 각광 받는 소재를 애니메이션화한 작품이다 보니 개봉 전부터 예비 관객들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이 같은 뜨거운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용과 주근깨 공주'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용과 주근깨 공주'의 주인공은 스즈(벨/나카무라 카호)다.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스즈는 우연히 가상세계(메타버스)인 U에 접속하고, 그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재탄생한다.

하루아침에 가상세계의 스타가 된 스즈. 하지만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벨의 공연장에 정체불명의 용(사토 타케루)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심각해진다. 여기에 정의를 앞세우는 일련의 무리들까지 나타나 용을 쫓으면서 벨의 공연은 엉망이 된다. 벨은 그 때 만난 용의 정체에 관심을 갖고 추적에 나선다.

현실에서 벗어난 가상세계 U는 그야말로 별세상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속 엘사를 연상시키는 벨의 아름다운 외모와 실제 주인의 개성을 반영한 각양각색 아바타들, 하늘을 날고 고래가 춤추는 신비로운 광경까지 시선을 빼앗는 요소들이 많다. 벨이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화의 첫 장면은 감동 그 자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후 영화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보여주다 끝내 공중에서 표류한다. 러닝타임이 중반 정도로 흐르면 오프닝이 줬던 웅장한 시각적 감동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게 된다. 마치 신기루 같은 가상세계처럼.

가장 큰 문제는 '산만한 스토리'다. 메타버스라는 배경에 '아즈'라는 아바타에 투영된 정체성 문제, 아동학대 문제, 사람 간의 유대와 연결성,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가족 회복, 로맨스까지 다 버무리려다 보니 러닝타임 내내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이야기가 없다. 과장 좀 보태서 주인공 스즈는 2시간 내내 가상세계의 용에게 "넌 누구야?"라고 묻는데, 이 질문은 도리어 관객이 던져야 할 판이다. "이 작품 정체가 뭐야?"라고.

스토리의 큰 줄기가 사라지자 남는 것은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들 뿐이다. 용이 왜 U에서 악당 취급을 받는지, 정의를 추구한다는 일당들은 왜 용을 쫓는 것에만 그렇게 몰두하는지, 벨은 용의 정체가 왜 그렇게 알고 싶은 건지, 용은 왜 악역을 자처하는지 등의 질문이 계속해서 생겨나는데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풀리는 답이 없다. 주인공들의 외양부터 '사랑으로 본모습을 꿰뚫는다'는 메시지까지 미녀와 야수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보였는데, 이 역시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아동 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촉구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는데, 이 문제의 결론이 참 애매하다. 마치 용기만 있다면 학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듯, 심각한 문제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데만 신경 써 사용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쯤 되면 '용과 주근깨 공주'는 120분 짜리 거대한 재능낭비를 보는 것 같다. 아름다운 화면과 비교되는 개연성이 휘발된 캐릭터. 21세기 영화계의 시각효과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가를 확인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오는 29일 개봉. 전체 관람가. 121분.

home 정진영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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