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조선의 고문법...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2021-11-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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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문헌에 잔인성 다수 서술돼
영조가 참관한 후 너무 잔인하다며 폐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고문 형태 중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버티는 사람이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형벌이 있다. 바로 '압슬형'이다.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해당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셔터스톡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해당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셔터스톡

압슬형은 죄인의 바지를 벗겨 바닥에 꿇어앉힌 상태에서 무릎과 허벅지 위에 벽돌이나 무거운 물체를 올리거나 널판지를 깔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타서 압박을 가하는 형벌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큰 고통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데다 도구를 이용하면 집행자가 계속 힘을 쓸 필요도 없기 때문에 집행하기 편리하면서 자백 등 효과도 뛰어난 훌륭한 고문법으로 취급받았다.

/고급유머, 위키미디어 등
/고급유머, 위키미디어 등

한국이나 일본의 문헌에는 "그냥 패는 걸로는 자백 안 하던 이가 압슬형을 하니 자백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쏟아질 정도라고 한다.

문제는 시행 도중 극한의 고통에 의한 쇼크로 죽어버릴 확률도 높고, 설령 살아도 무릎 관절과 다리뼈가 완전히 박살 나 평생 걷는 것은 고사하고 자력으로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된다는 것이다.

유교사회에서는 제사를 할 수가 없으니 효도는 물론 상속도 받을 수 없게 돼 그야말로 폐인이 되는 혹독한 형벌이었다.

국내에서는 고려 말부터 시행되다가 조선시대 당시 압슬형을 직접 참관한 영조가 폐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home 방정훈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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