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망하자… 조국 전 장관이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 글 올린 이유
2021-11-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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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명복을 빌지는 않았다
“그때 숨진 이의 명복을 빈다”

조 전 장관은 전씨가 숨진 23일 페이스북에 "1979년 12·12 쿠데타에 맞서다 숨진 군인들과 1980년 5·17 쿠데타와 5·18 학살에 저항권을 행사하다 숨진 시민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란 글을 올렸다.
12·12 쿠데타는 1979년 12월 12일 전씨와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 등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 하나회가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당시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당시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사건을 뜻한다. 전씨는 당시 군사 반란으로 군부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 실세로 등장했다.
전씨가 중심이었던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신군부는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1080년 5월 17일 밤 12시부터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정당 및 정치활동 금지·국회 폐쇄·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내렸다. 아울러 영장 없이 학생·정치인·재야인사 2699명을 구금했다. 실권을 장악한 하나회는 비상계엄 기간 제5공화국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국민 인권을 유린하고 헌정을 파괴했다.
신군부는 5·17 쿠데타에 항거한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을 집단으로 학살했다. 이것이 5·18 학살(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된 항거인들은 1980년 5월 18~27일 조속한 민주정부 수립,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신군부는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했고, 저항군이 이들 공수부대와 지속적으로 교전을 벌이며 항거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신군부가 언론을 통제한 까닭에 광주 탄압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에 소속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