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데뷔 9년 차 김태리가 알게 된 '진짜 사랑' [인터뷰 종합]

2022-08-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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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트리와 인터뷰로 만난 김태리
“이제야 조금 여유를 찾았어요”

마냥 밝아 보였던 김태리가 아무도 모르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을 찾았다. 나아가 한층 더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대중에게 사랑을 준 채비를 마쳤다.

김태리는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위키트리와 인터뷰를 진행,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김태리 / 이하 매니지먼트mmm 제공
김태리 / 이하 매니지먼트mmm 제공

‘외계+인' 1부는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김태리는 극 중 천둥 쏘는 처자 이안 역을 맡아 류준열, 김우빈, 김의성, 조우진, 염정아 등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 '외계+인'을 통해 오랜만에 극장을 찾게 된 김태리는 이날 “극장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뼈가 삭는 느낌으로 고통스러웠다. 나만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너무 설렌다”고 개봉 소감을 밝혔다.

'외계+인'은 이야기를 1부와 2부로 나눠서 제작했다. 1부는 지난달 20일 개봉됐고, 2부는 2023년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에선 쉽게 볼 수 없었던 구성이지만, 김태리는 “너무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다”고.

“드라마로 만든다면 6부작, 8부작도 충분히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훨씬 더 사랑스러운 에피소드가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4시간 안에 집어넣기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출연에도 큰 영향을 줬다. 평소 ‘영광스럽다’, ‘분에 넘친다’는 표현을 싫어한다는 김태리마저도 그 말이 절로 나오는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시나리오부터 술술 읽히던 ‘외계+인’ 출연 제의는 김태리에겐 기쁨이었다.

“세상만사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하늘에서 뚝 복이 굴러떨어져서 간택 됐다는 뉘앙스가 싫었어요. 영화 ‘아가씨’ 할 때도 그런 워딩을 안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워딩이 있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그런 말을 안 쓰려고 했지만 저도 몇 번 쓴 적이 있어요. 이제는 그런 말들을 안 써도 되니까 싫어하는데 ‘외계+인’은 영광스러웠습니다. 분에 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은 좋은가, 좋지 않은가 단 두 가지라고. 그는 “이런 장르, 이런 캐릭터 등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굿(GOOD)인지 배드(BAD)인지를 본다. 크게 구애받지 않고 진짜 좋은 걸 선택한다. 똑같은 걸 하는 게 싫다”며 “’외계+인’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인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되게 설렜다. 또 그 소년의 얼굴이 류준열이고 소녀의 얼굴이 나라는 게 소름 돋고 행복했다”고 강조했다.

이안은 시공간을 초월한, 복잡한 서사를 가진 캐릭터다. 이에 김태리는 이안의 다양한 이야기를 몇 겹의 레이어로 쌓을 수 있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그 자체로 이해했다. 아무리 생각해 봤자 관객이 생각하는 건 보이는 단면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박찬욱 감독님 인터뷰 중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캐릭터에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담는 건 없다’는 말인데요, 하나의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 빨리 바꾸는 게 좋은 연기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맞아요. 한 번에 여러 가지 레이어를 보여주는 건 무리예요.”

‘외계+인’에서 다양한 액션에 도전한 김태리는 기계 체조, 절권을 비롯해 다양한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웠다. 또 총을 쏘는 역할인 만큼 총을 자연스럽게 잡는 방법도 연구했다. 손이 작은 만큼 아름다운 동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김태리는 그런 배우였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채우는 배우.

“저는 태가 잘 안 나는 몸을 가졌어요. 체구가 작고 마르고 선들이 딱딱해서 촬영한 걸 보면 촌스러워 보여요. '외계+인'에서 입은 고려시대 의상이 그 촌스러움을 덮어줬어요. 커다란 천이 펄럭거리니까 있어 보이더라고요.(웃음) 영화든 드라마든 화보든 캐릭터를 만들 때 의상, 소품, 헤어 팀이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다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김태리가 말하는 촌스러운 연기는 솔직함이었다. 감추지 못하는 정직함이 연기할 때 촌스럽게 느껴졌다고.

“비밀이 있는 사람처럼 보여야 세련된 느낌인데 저는 생각한 걸 최대한 표현하려고 해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여유가 없으니 무술 할 때도 힘이 들어가는 거죠.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겼어요. 물 하나를 따를 때도 무조건 컵에 물이 넘칠 정도로 따랐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반반 정도? (웃음)”

앞서 인터뷰를 진행한 류준열은 김태리에 대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많이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김태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후 많이 달라진 게 맞다고 밝혔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을 본 거예요. 추상적이죠? 너무 복합적이라 3일 밤낮으로 말할 수 있어요. 특별한 하나가 아니에요. 다들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바닥을 치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데, 나는 더 내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 지금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났어요. 결국 그 시간도 끝이 나게 되어있잖아요. 제가 열심히 기어 올라온 세상은 이전과 다른 세상이에요.”

2014년 데뷔해 영화 '아가씨'로 얼굴을 알린 김태리는 데뷔와 동시에 안정적인 연기력과 개성 있는 비주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영화 ‘1987’, ‘리틀 포레스트’, 넷플릭스 ‘승리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이후 출연하는 수많은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지만, 그는 이제서야 본인의 지난날과 마주하고 있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끝나고 처음으로 이전 활동을 찾아봤어요. ‘뉴스룸’ 나온 것도 안 봤었어요. 너무 끔찍했거든요. (웃음) 최근 저의 브이로그만 보더라도 자유로운 상태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너무 많은 걸 신경 쓰고 배려하고 걱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에서 새어 나오는 무언가를 참았다면 지금은 정확하게 (내 생각을) 말해요. 하나도 부끄럽지 않고 모든 것에서 당당해진 것 같아요.”

특히 ‘외계+인’ 촬영은 김태리에게 사랑을 받고, 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몰랐던 그에게 동료 배우, 스태프들이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표현한 것.

“‘외계+인’ 직후 인터뷰에서 ‘사랑이 화두입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를 애정 하는 마음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배운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함께했던 사람들이 나를 너무 사랑해 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어요. ‘나는 저들이 생각하는 만큼 사랑받을 사람이 아닌데, 나의 이면을 몰라서 그렇게 칭찬하는구나’ 사랑을 깔아뭉개고 제대로 보지 않았죠. 그런데 ‘외계+인’을 하면서 ‘우리는 네가 참 좋아, 이안이가 참 좋고 너를 만나서 우리가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 등 이런 종류의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나는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나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낀 것 같아요. (웃음)”

이하 김태리 인스타그램
이하 김태리 인스타그램

마지막으로 인터뷰 내내 맑은 에너지를 내뿜던 김태리에게 ‘외계+인’에 대한 한줄평을 부탁하자 “당신들이 객석에 앉는 순간 시간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2부에는 배우가 바뀐다. 또 이하늬 배우님 연기가 기가 막힌다”고 예고해 기대감을 높였다.

데뷔 9년 차에 여유를 찾은 김태리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 배우 조합도 만들고 싶고, 출판, 번역, 연기, 연출, 노래, 음악, 프로듀싱, 시, 피아노, 동화,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것 등이 큰 관심사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김태리가 한층 더 여유로워진 상태에서 보여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home 김하연 기자 iamh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