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4일) '우영우'에 나온 에피소드… 실제로는 정말 가슴 아팠던 실화였다

2022-08-0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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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에 등장한 미르생명 사건
1999년 '농협 사내부부 구조조정 사건' 모티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회 중 '미르생명' 에피소드가 다뤄지면서 실제 모티브가 된 사건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23년 전 발생한 '농협 사내 부부 해고' 사건이다.

지난 4일 방영된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미르생명 여성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내용이 그려졌다.

이하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회 / 이하 ENA 제공
이하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회 / 이하 ENA 제공

극 중 미르생명 인사부장은 여성 직원을 불러 '사내 부부 직원 중 1인이 희망퇴직 하지 않으면 남편 직원이 무급 휴직 대상자가 된다'는 회사 방침을 들먹이며 자발적으로 퇴사하기를 권고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 앞길을 막아서야겠냐", "내조는 이럴 때 하는 거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해고된 일부 직원은 이를 문제 삼으며 법정 공방을 벌였고, 류재숙(이봉련) 변호사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성차별적 구조 조정을 규탄했다.

이날 방송에서 다뤄진 에피소드는 1999년 '농협 사내 부부 해고 사건'을 모티브로 재구성됐다.

1999년 연합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IMF 사태 직후인 그해 2월, 농협중앙회(농협)는 사내 부부 762쌍에 대해 두 사람 중 1명씩을 명예퇴직 시켰다. 당시 구조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던 사측은 그나마 부부 사원이 경제적 충격이 덜할 거라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해고된 688명(해고자의 91%)은 여성 직원이었다. (관련 기사 보기)

"남편을 위해 내조하라"는 드라마 속 인사부장 말은 실제 사건에서 은행 지점장이 한 말로 알려졌다. 명예퇴직 당한 뒤 계약사원으로 근무한 여직원 2명은 여기에 부당함을 느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로 형사소송을 내고 해고 무효확인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 단체도 지지의 뜻을 보탰다. 수년간 법정 싸움을 벌였으나, 2003년 대법원은 '부당해고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농협이 축협 등과 통합을 앞두고 인력감축이 절실한 상황에서 구조조정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노조의 동의를 얻어 명예퇴직제와 순화명령휴직제를 병행해 시행했다"며 "농협이 원고들에게 명예퇴직을 강요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류재숙 변호사도 실재했다. 당시 해고 여성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중 한 명인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다수 매체를 통해 사건 이후 이야기를 털어놨다.

김 변호사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당시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일"로 이 사건을 꼽으면서 "2003년까지 이어진 이 사건에서 패소판결을 받고 변호사로서 자신감은 잃었지만, 돌이켜보면 이를 계기로 여권신장에 필요한 논리를 저 스스로 정립시킬 수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21 기고를 통해 "신참 변호사였던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아팠을 사건 당사자들에게서 격려받았다. 어리바리 변호사가 불안했을 텐데,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따뜻한 붕어빵이나 시원한 냉커피와 함께 늘 ‘파이팅’을 외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사건 이후 해고 여성들이) 재판을 해봐서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이제 변호사님을 자주 못 만나는 게 더 아쉽다'는 감사 인사까지 받았을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들은 해고 이후 같은 지점에서 월급 반토막의 계약직으로 일하거나 다른 은행의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늘 씩씩했고 후회보다는 최선을 다했다며 앞으로 은행들이 이런 일을 함부로 못 할 것 아니냐는 자부심을 보여줬다"고 했다.

home 김혜민 기자 khm@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