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人香萬里)] 강창희 전 국회의장

2022-09-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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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이 만난 사람···“정치인은 '열정과 책임감' 있어야”
“늘 국가와 국민 생각해야···신뢰와 사랑은 말보다 실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7월 국회시정 연설 후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7월 국회시정 연설 후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위키트리] 김주완 기자= 진의종 국무총리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 15대 국회 자민련 원내총무, 과학기술부 장관과 국회의장을 지낸 충청의 정치 거목.

이제 충청은 나라의 중심이며 대한민국의 기운이 세종시 출범과 함께 충청으로 넘어오고 있다. 과거 영·호남으로 대립돼 온 정치적 힘의 균형이 부·울·경을 거쳐 이제는 국토의 중심 충청으로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흐름의 상징적 출발점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의 탄생이다. 오는 2027년 국회 세종시 의사당이 개원된다. 또 비서동과 관저를 갖춘 대통령 세종집무실의 건립이 확정된 상태다. 이렇게 세종·충청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기까지는 그동안 많은 충청인들의 역할과 노력이 있었다 .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2017년 12월20일 4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에 취임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2017년 12월20일 4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에 취임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을 꼽으라면 19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강창희 현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아닐까 싶다.

강 전 의장은 1946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육군대학 교수를 거쳐 중령으로 예편하기까지 육사 동기생들 중 항상 선두에 섰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당시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는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해 3년 후 1983년 11대 전국구 국회의원을 승계하며 본격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왼쪽)이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만나 지역현안을 설명하고 지원을 건의하고 있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왼쪽)이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만나 지역현안을 설명하고 지원을 건의하고 있다.

그는 1985년 12대 총선 당시 대전 중구에 출마해 당선 됐지만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어 그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대전 중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1995년 김종필(JP)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에 입당한 그는 이듬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1998년 3월∼1999년 3월까지 과학기술부장관으로 일했다.

과기부장관 시절 IMF 경제위기를 맞은 당시 정부는 일부 부처를 줄이겠다며 과기부를 그 대상에 포함시켰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나라발전'이라는 강 전의장의 집요한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과기부는 존치됐다. 그래서 지금의 과기부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당시 관료들은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2013년 4월 페루를 방문, 양국 우호관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페루대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2013년 4월 페루를 방문, 양국 우호관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페루대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다.

제15대 국회 자민련 원내대표 시절, JP의 내각제 포기 발표에 미련 없이 그는 원내대표직을 내던졌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2004년 제17대,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그는 연거푸 낙선하는 쓴 맛을 봤다.

강 전 의장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서 출마해 오뚜기처럼 부활하며 6선 고지에 올랐다. 이어 그는 지난 2014년까지 제 19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정치권에서는 강 전 의장을 일컬어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뚝심과 과감한 결단력은 그의 큰 장점이다.

강창희 전 의장이 2014년 뉴질랜드 웰링턴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창희 전 의장이 2014년 뉴질랜드 웰링턴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어떤 일이든 한 번 마음 먹으면 끝장을 보는 승부사적 기질이 강하다. 또한 불의를 보면 절대 못 참는 성격이다. 그래서 때로는 손해도 보지만, 강렬한 눈빛과 직설적 화법으로 이미지가 강하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 그는 인간미 넘치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이다.

현재 정치 일선에서 비켜서 있지만 그는 여전히 배포가 크고 포용력과 친화력이 뛰어난 정치 원로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야 선·후배 정치인들은 그를 자주 찾는다. 특히 그는 어느 정치인보다도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한 사람이다.

그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지난 2001년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의원꿔주기 소동이 한바탕 일어났다. 당시 자민련의 국회의원 수는 17명 밖에 되지 않았다. 20명의 현역의원이 있어야 국회 원내 교섭단체로 등록할 수 있었지만 3명이 부족했다.

당시 김대중·김종필(DJP) 공동정권을 탄생시킨 민주당과 자민련은 JP의 자민련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지원키 위해 민주당 의원 3명을 탈당시켜 자민련으로 보냈다.

강창희 전 의장이 대전 경북 등 4개시도 의회 관계자를로부터 도청이전을   위한 도시건설 및 특별법 개정 지원 건의를 듣고 있다.
강창희 전 의장이 대전 경북 등 4개시도 의회 관계자를로부터 도청이전을 위한 도시건설 및 특별법 개정 지원 건의를 듣고 있다.

이 같은 의원 꿔주기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 초유의 회괴망측한 일로 평가됐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당시 자민련부총재였던 그는 당으로 이적해 온 의원 3명에게 민주당으로 즉각 돌아가라며 교섭단체 등록날인 거부 입장을 취했다.

자민련은 부총재인 강 전 의장에게 탈당을 권유했고 급기야 교섭단체 등록날인을 거부한 그를 당무회의에서 제명시켰다. 이와 관련해 당시 각종 언론에서는 강 전 의장에 대한 관련 기사들이 봇물을 이뤘다.

2001년 1월초 모 언론에 나온 기사의 한 대목이다. "강창희, 어려워도 옳은 길을 걸었습니다", "국회의원 세명을 꾸어와 교섭단체를 만들려는 엉터리 정치에 저는 분명히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오늘 살고 내일 죽는 길이 있고,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사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죽어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습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그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그의 이 같은 보도와 기자회견에 대해 "갖은 압력과 회유에도 꿋꿋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강 의원의 태도는 정치판에 귀감"이라고 평했다.

2013년 4월 국회의장실에서 강창희 전 의장(오른쪽)과 인터뷰를 갖고 기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강창희 홈페이지
2013년 4월 국회의장실에서 강창희 전 의장(오른쪽)과 인터뷰를 갖고 기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강창희 홈페이지

명분을 중시하는 강 전 의장의 뚝심과 뱃장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혹자는 그를 외유내강의 인물 이라지만 기자가 본 그는 되레 외강내유에 가깝다. 겉으로는 단호하면서도 결단력과 절제력 뒷켠엔 한없이 따뜻하고 속 깊은 사람이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고 치밀하다 보니 일견 냉철하고 강한 이미지로 비춰 질 수 있다. 정치인 강창희는 감성과 이성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화상대를 이해해주려는 배려심이 돋보인다.

대범하고 통 큰 정치인으로서 자기관리가 철저한 강 전 의장은 가족은 물론 비서진들을 이면에서는 숨이 막 힐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했다. 보수적 윤리와 책임의식에 철저하게 함몰되었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항상 원칙을 고수하고 철저한 자기관리 탓에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마음고생이 컸다는 후문이다.

이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빌미로 접근해 오는 세상의 각종 유혹을 떨쳐내야만 정치권에서 떳떳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소신 탓 때문이다.

의사봉 두드리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의사봉 두드리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20세기 초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과 공직자의 본분과 덕목을 제시한 바 있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으로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혜안을 꼽았다. 그는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것이지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 한국 정치사에서 거물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 강 전 의장은 열과 성을 다하며 정치사에 나름 큰 족적을 남겼다. 사사로움을 접고 남 보다 항상 한 발 앞장서 뛴 열정의 정치인을 꼽으라면 기자는 주저없이 강 전 의장을 말할 것이다.

30년 넘게 그의 정치철학을 지켜봐 온 기자가 볼 때, 그는 분명 최고의 정치인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그와 만난 자리에서 현 여야 정치권에 대해 잠시 논한 바 있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강창희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강 전 의장은 "지나친 진영논리와 이념 논리에 빠져 상대방을 과소평가 하거나 가볍게 여겨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은 여야 모두 삼갔으면 좋겠다"면서 "무슨 일이든 충분히 심도 있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언행을 했으면 한다"고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했다.

"정치인은 늘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는 그는 "신뢰와 사랑은 말보다는 실천"이라고 말했다. 그의 정치철학과 이념은 오늘 우리에게 큰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home 김주완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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