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대기업 사원보다 훨씬 잘 버는 건설현장 관리직 하다 그만둔 썰 푼다” (+이유)

2023-01-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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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정말 잘 모이더라”
“정신질환약 먹고 있다”

한 직장인이 타 업종 대비 임금이 높은 건설 현장 관리자로 일하다 미련 없이 그만둔 이유를 자세히 밝혔다.

A씨가 건설 현장 관리자로 일했을 때 촬영한 현장 사진. /개드립
A씨가 건설 현장 관리자로 일했을 때 촬영한 현장 사진. /개드립

누리꾼 A씨는 최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개드립에 '내가 건설 현장 관리자를 그만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해당 사연을 통해 7년 가까이 건설 현장 관리자로 일하면서 겪었던 좋고 나쁜 일들을 밝히며 결국 그만두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집안 어른들은 죄다 건설 관리자였다. 현대, 대우 다니던 큰아빠들과 우리 아빠를 보며 커서 그런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건축공학과 썼다. 우리 아빠도 "그냥 네 맘대로 해라"고 하셔서 입학했다.

근데 웃긴 건 우리 집만 이랬고 다른 큰아빠들은 절대 형들 건축과 못 쓰게 욕하고 체벌하면서 말리셨다고 하더라.

난 대충 졸업하면서 기사 자격증 하나 땄다. 그저 그런 사회초년생으로 대기업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중견기업 정직원으로 이직했다. 겪어 보니 장단점이 너무 명확한 직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장점

1. 임금이 타 업종 대비 높다.

2. 내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돈이 잘 모인다. 통신비, 간식비, 식사비 다 회사에서 돈으로 주거나 대신 결제해줬다.

3. 나름 이직하기 쉬운 직종이라 좀 열심히 하면 대기업 가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단점

1. 개인 시간이 없다. 내 경우는 오전 5시 30분까지 출근해서 도면, 일정 정리하고 7시부터 정규 근무 시작했다. 퇴근은 오후 6시에서 자정 사이에 했다.

회식 끝나고도 다음 날 새벽에 바로 검사·측정 준비했고, 빨간 날도 없었다. 오직 설날이나 추석, 근로자의 날만 하루씩 쉬었다. 물론 부장급들은 그냥 알아서 3일씩 다 쉼

2. 남자들밖에 없다 보니 군대 생활이었다. 차라리 군대는 2년 있으면 끝나는 데 이건 평생이다. 정강이 구타는 안 당해봤지만, 안전모랑 철근 자투리, 줄자로 맞아봤다. 진짜 별 이유로 다 맞아봤다.

3. 수도권 근무하기가 힘들다. 수도권 현장이 있어도 연차 순이나 사회생활 잘한 애들이 자리 차지한다. 그런 거 못 한 애들은 다 지방으로 내려간다.

지방에서 숙소 공용으로 쓰는 것도 힘들었다. 말은 1인 1실이라고 하는데, 보통 아파트 하나 빌려서 3명이 거주한다. 화장실은 당연히 공용인데, 내가 매주 한 번씩 소변 다 튀고 똥 묻은 변기 보면서 진짜 충격 심하게 받았다. 청소는 주기적으로 아주머니 고용해서 맡겼는데, 저런 거 매일 보는 게 힘들어서 내가 물로 닦았다.

4. 성격들이 터프하다. 생명하고 직결되는 데다가 다들 잘 쉬지도 못하다 보니 욕은 기본이고 물건 집어 던지는 것도 일상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왜 집에 가려고 해?' '집에 가면 떡 나오냐?' '그냥 돈 벌게 회사에 있어'라는 말 많이 들었다.

5. 너무 위험하다. 난 380kg 블록에 깔릴 뻔한 적 있고, 크레인에서 패널 떨어져서 다른 사람 깔린 것도 봤다. FRC 패널에 가슴 찍혀 뼈 부러져서 즉사한 사람도 직접 봤다.

근데 사무직 친구는 다리 삐끗한 거 보여주면서 나 많이 다쳤다 그러더라. 이때 진짜 현실을 깨달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나는 이런 목숨 위험한 곳에서 일해야 하나 싶어 무서웠다. 핏기 사라지는 사람 보고, 벤딩 머신에 손가락 걸려 비명 지르는 사람 보는 거 너무 무서웠다.

이런 단점들로 결국 퇴사했다.

이 생활 몇 년 하다 보니까 우울증 걸리더라. 대인기피증, 공황장애까지 와서 극단적 시도도 몇 번 했다. 이거 아니면 밥 먹고 살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평생 이것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살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지금은 정신질환약 먹으면서 고치고 있다. 직장 바꾸면서 약도 거의 끊게 되더라.

요즘엔 다른 건설 관련 업종에서 내근직하고 있는데 매일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낙일 정도로 여유롭다. 이렇게 사는 게 7년 정도 일하면서 처음이라 어리둥절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좌)과 다량의 5만 원권. (참고 사진) /Happy_stocker·mujijoa79-shutterstock.com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좌)과 다량의 5만 원권. (참고 사진) /Happy_stocker·mujijoa79-shutterstock.com

해당 사연을 접한 일부 누리꾼들은 "우리 아버지도 진짜 쉬는 날이 없었는데 요즘에도 저런다는 게 충격이네" "고생 많았다" "나도 똑같은 이유로 건축 감리사 내근직으로 아예 뿌리 박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게’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home 방정훈 기자 bluemoon@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