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인터뷰] 현장이 무서웠던 소녀 이보영, '대행사' 이끄는 왕이 되다 (종합)

2023-02-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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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1주년 맞이한 이보영의 속내
“'대행사' 고아인 보면서 '나도 잘 버텼구나' 싶었어요”

역시 이보영이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불패 신화를 기록하는 이보영이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JTBC ‘대행사’를 마친 이보영은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위키트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3년 2월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위키트리와 만난 이보영이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하 제이와이드컴퍼니
2023년 2월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위키트리와 만난 이보영이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하 제이와이드컴퍼니

‘대행사’는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우아하면서도 처절한 광고대행사 오피스 드라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6일 방송된 ‘대행사’ 16회는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 시청률 16.044%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종영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이보영은 “이러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종영 소감을 밝혔다.

“요즘 시청률이 잘 안 나오잖아요. 10시 30분에 드라마를 한다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그 시간에 자거든요. 10%만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봐주시더라고요. 기대했던 것보다 잘 나와서 감독님이랑 저랑 둘 다 당황스러웠죠. 아침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메시지를 주고받았어요. (웃음)”

이보영과 고아인은 많이 다르다. 고아인은 불면증이 있어 잠 못 드는 밤이 지속되지만, 이보영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10시면 잠에 든다. 또 고아인은 임팩트 강한 광고 카피를 척척 내놓지만, 이보영은 창작이랑은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이보영이 회사원이라면?”이란 전제에는 “정치를 못 해서 진작에 꺾였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이보영. 비슷한 부분도 없고, 공감 가는 캐릭터도 아니지만 이보영은 고아인이 응원받기를 바랐다.

“이렇게 사회부적응인 캐릭터를 본 적이 없어요. 이러다 조직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참고한 캐릭터도 없어요. ‘대행사’는 이렇게 부족한 캐릭터가 성장해 나가서 사람이 되어가는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했어요. ‘아인이가 독설을 해서 미워 보이지만, 저 아이를 응원할 수 있게 찍자’에 포커스를 뒀죠.”

고아인은 실력만으로 대기업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까지 올라간 성공한 인물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고, 실력이 없는 후배에게는 독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할 말은 다 하는 캐릭터는 이보영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어쩜 저렇게 말싸움을 잘할까 싶었어요. 아인이 대사가 재미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평소 아인이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못 봤어요. 그런데 이렇게 나 대신 질러주는 사람을 보니까 시원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옆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싫겠지만, 재미있었어요. (웃음)”

다음은 JTBC 드라마 '대행사' 스틸이다. / 이하 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다음은 JTBC 드라마 '대행사' 스틸이다. / 이하 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마냥 멋있는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고아인은 도박꾼이자 술꾼인 아빠와 가출한 엄마 덕분에 7살 때부터 고모가 주는 눈칫밥을 먹으며 자라야 했다. 회사에선 누구보다 당당하지만, 집에 홀로 있을 때는 공황장애와 불면증으로 인해 술과 약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삶을 산다.

“아인이가 술을 먹고 약을 먹잖아요. ‘정말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신 찍을 때마다 진짜 몸이 아프고 열이 났어요. 혼자 집에 문 열고 들어가는 신 찍을 때 그렇게 외롭더라고요. 회사에서 여러 명이 시끌벅적하다가 집에서 찍을 땐 하루 종일 혼자 있으니까. 불 꺼진 집에 들어가기 정말 싫었어요.”

그뿐만이 아니다. “다시 데리러 올게”라던 엄마는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도망 다니다, 35년 만에 나타나 고아인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2013년 배우 지성과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둔 두 아이의 엄마 이보영은 35년 만에 만난 엄마를 용서하는 신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고비였어요. 아인이가 결핍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선 엄마를 용서해야 하니까 찍었지만, 제가 아이를 낳고 보니까 저는 용서가 안 되더라고요. 그 부분 찍을 때 구시렁대면서 찍었어요. 어떻게 무섭다고 애를 버리고 가요. 그래도 그 부분을 풀지 않으면 이야기가 넘어가지 않으니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찍었죠.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더라고요. ‘나 같으면 이렇게 용서 못 해!’라고 말했어요. (웃음)”

이보영은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기 신인 시절이 떠올랐다고 털어놨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잘 버텼구나”라고 자신이 모습을 투영한 것.

“신인 때는 카메라가 앞에 있고 또 수십 명의 스태프가 있으니까 연기가 잘 안됐어요. 연기를 못하면 욕먹고, 그래서 촬영이 지연되면 눈치 보이고, 분위기가 싸해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현장 가기가 어려웠죠. 감독님이 뭐만 해도 움찔거리고 그런 상황에서 연기가 잘 될 리가 없잖아요. 도망가고 싶고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 내가 이 일을 되게 좋아하구나!’ 느꼈어요.”

KBS2 ‘적도의 남자’ 이후 현장의 재미를 느낀 이보영은 최근 2년에 한 번씩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활동 중간 공백기가 있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재미있는 작품이 없어서”라고.

“저는 제가 재미있어야 해요. 제가 봤을 때 재밌어야 보시는 분들도 재미있어하시더라고요. 대본을 봤을 때 재밌거나 뭔가 가슴에 훅 들어오는 게 우선이에요. 주변에서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이게 재미있어?’ 이렇게 돼요. (웃음)”

“이끌든가 따르든가 떠나든가”,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 등 ‘대행사’는 이보영 가슴에 울림을 준 대사가 가득했다. 특히 실력 없는 후배에게 내뱉은 “사람은 좋아하는 일 말고, 잘하는 일을 해야지”라는 대사는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놀라우면서도 공감이 가는 대사였다.

그렇다면 어느덧 데뷔 21주년을 맞이한 이보영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데 잘하기까지 하는 일’ 중 어떤 것에 더 가까울까.

“잘하는 건 아니에요. 하면 할수록 어렵고 모르겠어요. 이번에도 찍으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저렇게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많이 생각했던 작품이에요. 어떤 분들은 제 연기를 보고 잘했다고 하시지만, 어떤 분들은 못 했다고 하시잖아요. 주관적인 거라 정말 어려워요.”

여전히 어려운 연기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이보영이 대본을 보고 웃는 작품을 만나면 시청자들도 덩달아 웃게 된다는 것. 차기작으로 올 하반기 공개 예정인 티빙 '하이드'를 선택한 그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home 김하연 기자 iamh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