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이름만 봐도 누가 만든 건지 다 안다는 영화, 모두 '힌트' 눈치챘나요?

2023-03-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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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이병헌 감독
개봉 전부터 “또, 재탕” 소리 나온 이유

이병헌 영화감독의 신작이 다음 달 개봉한다. 박서준과 이지은(아이유)이 주연이다. 안 그래도 이 감독 영화는 '웃음'이 보장돼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여기에 이름만 들어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연기파 조연배우들까지 대거 등장한다고 한다. 기대에 찬 이병헌(배우 말고 감독) 마니아들이 벌써 극장에 갈 채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포털사이트에 영화 제목을 검색하면 소개란을 꽉 채운 출연자 라인업이 눈에 띈다. 김종수, 고창석, 양형민, 허준석…? 등장인물을 보다 보니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배우들 본명 아래에 작게 적힌 배역 이름이 어딘가 낯익다. 김환동, 전효봉, 손범수, 황인국…? 싸늘하다. 또 그 이름이다. 이 정도면 '재탕' 수준을 넘어 '사골'로 봐야 할 것 같다. '이게 무슨 소린고?' 하는 사람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 감독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은 여태 아예 같거나 거의 같았다. 내가 만든 인물에 이름을 다는 것까지가 창작의 완성이라고 보는 누군가와는 완전히 다른 작명법(?)이 이 감독에겐 있다. 아주 독특한 그런 방법이…. 약 4년 만에 나오는 이 감독의 새 영화를 환영하는 의미를 담아,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 배우 말고 '감독 이병헌'

이병헌, 그는 누구인가. 동명 배우가 먼저 데뷔하는 바람에 '배우 말고 감독'이란 부가 설명이 필요하게 된 이 감독은 1980년생으로 데뷔 때부터 '젊은 감독'으로 통했다.

영화 감독 이병헌 / 연합뉴스
영화 감독 이병헌 / 연합뉴스

감독 데뷔 전부터 각색가로 이미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그의 첫 작품은 2008년 개봉한 '과속스캔들'이다. 강형철 감독과 함께 각본을 담당했다. 그 인연 덕인지 영화 '써니'에서 각색과 스트립터를 맡기도 했다.

처음 연출한 작품은 단편영화 '냄새가 난다'(2009). '글만 잘 쓰는 게 아니었다'는 걸 입증하듯 이 작품으로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장편 연출작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였다. 장편 첫 작품까지 제3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자 충무로 시선이 이 감독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각색과 연출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이 감독은 2015년 다시 데뷔를 겪었다. 이번엔 배우였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웹드라마 '먹는 존재'에서 허세남 이병헌을 연기한 사람이 바로 이 감독이다. 이 작품으로 이 감독은 연기, 각본, 연출에 모두 능통한 만능인으로 거듭났다.

□ 이병헌 감독이 그동안 선보인 작품들

이 감독은 영화 '스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김우빈의 재발견'이란 평을 끌어내기도 했던 이 영화는 이 감독의 첫 장편 상업영화다. 적재적소에서 웃음 폭탄을 터뜨려 관객 광대뼈를 얼얼하게 한 이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을 연출했는데, 소소한 재미와 현실성 있는 스토리가 담긴 드라마였다는 평을 끌어냈다.

총 관객 1626만 명을 기록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은 이병헌 감독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 (왼쪽부터) 배우 진선규, 이동휘, 류승룡, 공명, 영화감독 이병헌 / 연합뉴스
총 관객 1626만 명을 기록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은 이병헌 감독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 (왼쪽부터) 배우 진선규, 이동휘, 류승룡, 공명, 영화감독 이병헌 / 연합뉴스

이후 내놓은 '극한직업'(2019년 1월 23일 개봉)은 그의 인생작이자 첫 '1000만 영화'다. 전 국민이 배꼽을 잡게 한 코미디 영화를 내놓은 이 감독은 이 영화 덕에 23번째로 '1000만 관객'을 달성한 감독이 됐다. 총 관객이 무려 1626만 명이나 된다. '명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이 '극한직업'은 군더더기 없는 코미디 영화란 찬사를 받으며 이 감독 실력을 온 동네에 소문내는 계기가 됐다.

그해 8월엔 첫 TV 연출작인 JTBC '멜로가 체질'로 시청자를 만났으나, 시청률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대신 단단한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이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찰진 대사와 보물찾기처럼 극 안에 숨겨둔 웃음 요소가 여럿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재탕'의 시작

재밌다는 소문을 듣고 이 감독의 작품을 정주행한 이들 사이에 언제부턴가 의혹(?)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실수라고 보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의도적이라고 하기에도 석연찮은, 배역 이름에 관한 것이었다.

이병헌 감독의 첫 TV 연출작인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이름은 손범수(안재홍)와 임진주(천우희)다.  / JTBC
이병헌 감독의 첫 TV 연출작인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이름은 손범수(안재홍)와 임진주(천우희)다. / JTBC

'이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겹친다'는 점을 일찌감치 눈치챈 이들은 '환동', '범수', '인국', '효봉' 그리고 '소민', '홍대', '진주', '혜정'이란 이름에 특별한 사연 같은 게 있을 거라 예측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수는 '스물', '힘내세요, 병헌씨', '멜로가 체질', '바람 바람 바람' 등 이 감독 작품에 꾸준히 등장했다.

환동과 인국도 마찬가지다. '긍정이 체질'에 나온 김환동(도경수)은 '멜로가 체질'에 나온 김환동(이유진)과 다른 인물이지만 이름이 같다. '극한직업'에서 배우 이중옥의 이름도 환동이었다.

이병헌 감독의 첫 상업영화 '스물' 스틸컷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제공
이병헌 감독의 첫 상업영화 '스물' 스틸컷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제공

'스물'에서 안재홍이 먼저 쓴 인국이란 이름은 '긍정이 체질', '멜로가 체질'을 거치며 주인이 바뀌었다. 효봉이란 이름을 공유한 배우는 윤지온('멜로가 체질'), 정준영('오늘의 연애'), 고준('바람 바람 바람') 등이다.

위 이름은 거의 '사골' 급으로 두고두고 나오고 있으며, 그 외에도 소민('스물', '멜로가 체질'), 재훈('극한직업', '멜로가 체질'), 진주('스물', '멜로가 체질,), 혜정('긍정이 체질', '멜로가 체질')도 '재탕' 중이다.

□ 작품 속 캐릭터 이름의 비밀

"전작에 이미 쓴 이름이란 걸 까먹었나?", "이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나?", "설마 세계관이 연결되나?" 각종 의혹이 이 감독의 한 인터뷰가 전해지면서 말끔히 씻겼다.

이병헌 감독의 연출작인 (왼쪽부터)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에 나온 환동(도경수)과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나온 환동(이유진). 심지어 성도 둘 다 '김(金) 씨'다. / 네이버TV, JTBC
이병헌 감독의 연출작인 (왼쪽부터)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에 나온 환동(도경수)과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나온 환동(이유진). 심지어 성도 둘 다 '김(金) 씨'다. / 네이버TV, JTBC

어떤 의미 같은 것이 존재할 거라 기대했던 이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이유였다. 여럿의 궁금증을 샀던 이 이름들엔 원래 주인이 따로 있었다. 바로 이 감독 지인들이었다.

작품마다 인물 이름을 짓는 게 귀찮았던 이 감독이 지인들 이름으로 배역 이름 돌려막기(?)를 시전한 것이다.

환동이나 범수, 인국, 효봉처럼 자주 등장하는 이름일수록 더 친분이 있는지는 따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아직 자주 쓰이지 않은 후보(지인 이름)로 병삼, 미영, 치호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26일 개봉하는 영화 '드림' / 이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다음 달 26일 개봉하는 영화 '드림' / 이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4월 개봉을 앞둔 신작 '드림'

이 감독이 '극한직업' 이후 약 4년 만에 연출을 맡은 '드림'은 개념 없는 전직 축구선수 홍대(박서준)와 열정 없는 PD 소민(이지은)이 집 없는 오합지졸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축구 얘기란 소리다. 2010년 대한민국이 첫 출전한 홈리스 월드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왼쪽부터) 오는 4월 26일 개봉하는 '드림'의 배우 박서준, 영화감독 이병헌, 배우 이지은(아이유)
(왼쪽부터) 오는 4월 26일 개봉하는 '드림'의 배우 박서준, 영화감독 이병헌, 배우 이지은(아이유)

주연인 홍대·소민과 함께 환동(김종수), 범수(정승길), 효봉(고창석)도 나온다.

4월 개봉을 앞둔 이병헌 감독의 새 영화 '드림'에도 범수(정승길)라는 이름이 나온다.
4월 개봉을 앞둔 이병헌 감독의 새 영화 '드림'에도 범수(정승길)라는 이름이 나온다.

코미디 영화의 대부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고, 중부(?) 정도 하는 이 감독은 '극한직업' 흥행으로 아마도 살면서 가장 말을 많이 했을 2019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2019년 1월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천만 감독'에 등극한 이병헌 감독 / 뉴스1
2019년 1월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천만 감독'에 등극한 이병헌 감독 / 뉴스1

"제가 왜 이렇게 코미디를 좋아할까 스스로도 생각해봤어요. 웃으면 행복해지니까? 맞아요. 그거 같아요. 지속성에 대해서는 보장할 수 없지만 웃음은 행복으로 직결되니까요. 그것에 성공했을 때, 비로소 코미디의 가치가 빛을 발휘했을 때, 제게도 큰 행복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코미디에 진심인 이 감독이 연출한 '드림'은 다음 달 26일 개봉한다.

home 김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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