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4기 판정받은 경찰이 은행서 벌인 일… 누리꾼들 “경의 표한다” (익산)
2023-04-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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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판정 받고 휴직 중이던 3년 차 경찰
보이스피싱 수거책 잡아 “ATM 양보에 직감”
휴직 중인 경찰관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을 잡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충북 청주상당경찰서 소속의 정세원 순경이다.

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세원 순경은 지난달 30일 오후 전북 익산시의 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하러 갔다가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다.
ATM 한 대가 고장 난 탓에 나머지 한 대에 고객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정 순경 앞에 있던 30대 후반의 남성이 돌연 정 순경에게 순서를 양보한 것이다. 정 순경은 "입금이 오래 걸리니 먼저 하시라"는 남성의 말을 듣자마자 범죄를 직감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정 순경은 “어디에, 얼마나 입금하시는 거냐”, “텔레그램으로 지시받고 일하시는 거냐”며 남성을 추궁했고, 남성은 쭈뼛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정 순경이 당황해하는 남성에게 자신이 경찰관임을 밝힌 뒤 그의 가방 속을 확인해보니 현금 1700만 원이 세 개의 봉투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계속된 질문에 남성은 "잘 모르니 담당 직원이랑 통화해보라"며 정 순경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핸드폰으로 연결된 직원은 "금 거래를 하는 거라 이런저런 돈을 입금하는 것"이라고 답변을 얼버무리더니 어느 거래소에서 근무하냐고 묻자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확신이 든 정 순경은 즉시 112에 신고 후 남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 둔 뒤 도착한 경찰관들에게 남성을 인계했다.
익산경찰서는 이 남성으로부터 1700만 원을 회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준 뒤 사건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순경은 청주상당경찰서 소속의 3년 차 경찰관이다. 지난해 10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휴직한 뒤 고향인 익산에 머물며 항암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정 순경은 항암 치료를 위해 가슴에 케모포트(약물 투여 기구)를 삽입한 상태였던 탓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의심스러운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저 없이 나서 1700만 원 피해를 막아냈다.

정 순경은 "1년간 지능범죄수사팀에서 근무했던 덕분에 '먼저 하시라'는 말 한마디에 느낌이 왔다. 마땅히 경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송금 직전 검거에 성공,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귀감이 되는 모범경찰로 특진시키고 하루빨리 완치하기를",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이런 게 경찰의 촉인가" 등 반응을 보였다.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으로 입은 피해가 약 1.7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그간 보이스피싱범을 검거하더라도 형법상 사기죄(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를 적용하고 있어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지난 달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를 통과하면서 보이스피싱에 대한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은 법사위, 본회의 등을 거쳐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시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