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앞을 가린다.... 전국을 뒤흔든 군 관련 사고들
2023-07-2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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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서특필된 군 관련 사고
2010년대 기준으로 사례 정리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너희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
군대에서 사고로 다치거나 숨진 군인이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유명한 말이다. 군 관련 사고가 한 번씩 일어날 때마다 대응책이 나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10년대 기준으로 전국을 들썩였던 군 관련 주요 사고들을 살펴봤다.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2011년 7월 4일 인천 강화도의 한 해병 부대에서 병사가 총기를 난사했다.
당시 해병대 관계자는 강화군 길상면 선두 4리에 있는 해안 소초에서 김 모 상병이 총기를 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하사 1명과 상병 2명, 일병 1명 등 4명이고 부상자는 총기를 난사한 김 상병과 다른 이병 1명이다.
전역을 9개월 정도 남겨 놓고 사고를 낸 김 상병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며 총을 난사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사건 당시 이병에 불과했던 권혁 일병의 빠른 대처로 후속 피해를 막았다. 총소리를 듣고 생활관 입구 쪽으로 달려간 권 일병은 총을 왼손으로 움켜쥔 채 김 상병을 내무반 밖으로 밀쳐내고 안에서 문을 잠갔다. 허벅지에 2발의 총알이 박혔지만 굴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 김 상병은 미리 총기와 탄약을 빼내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평소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 상병은 기수열외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역시 따돌림을 당했던 정 모 이병도 범행에 가담했던 것이 드러났다. 군사재판에서 김 상병은 사형, 공범 정 이병에게는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이들에게 가혹 행위를 한 혐의로 4명의 선임 해병도 구속됐다.
한편 총상을 무릅쓰고 전우들을 지켜낸 권 일병의 경우 이병에서 일병으로 1계급 특진과 보국훈장 5등급 광복장을 받았다. 이후 부상으로 의병 전역했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해병대의 내무부조리가 지적되자 해병대는 인성 검사를 강화하고 가혹행위 가담 해병에 대한 엄벌 방침을 천명하는 등 대대적인 병영문화 혁신에 나섰다.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2014년 6월 21일 육군 제22보병사단 GOP에서 임 모 병장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뒤 총기를 난사했다. 해당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 범행 후 무장 탈영한 그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됐다.
임 병장은 경계근무를 하던 중 순찰일지에 자신을 희화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소초원들로부터의 따돌림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상관 살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병장은 “부대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분노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정상 참작을 호소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대법원은 임 병장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임 병장 사형 확정 선고에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고 인격장애 증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대 내 조직적 따돌림이나 폭행, 가혹행위 등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평소 친하게 지내거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후임병에게도 소총을 발사해 살해했다”며 “범행도 지능적이고 냉혹했다”고 판단했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2014년 4월 7일, 육군 제28보병사단 포병여단 977포병 대대 의무대에서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 윤승주 일병을 집단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시 윤 일병이 생활관에서 선임 병사들과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의무대에 파견된 앰뷸런스 운전병 이찬희 병장을 포함한 4명에게 구타를 당했다. 윤 일병은 구타당하다가 쓰러졌으나 폭행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윤 일병은 사망에 이르렀다.
처음엔 단순 폭행으로 인한 사망 사건으로 수사가 진행됐으나 윤 일병 사망과 관련한 증언들이 나오면서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선임들은 폭행당해 다리를 저는 윤 일병에게 꾀병이라며 도리어 더 심하게 폭행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주기도 했다. 또 치약 한 통 먹이기, 잠 안 재우고 기마자세로 서 있기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고 한다.
해당 사건은 직전에 있었던 제22보병사단 총기 난사 사건과 겹쳐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말로 화제가 됐다.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까지 가해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데 2년 4개월이 걸렸다. 다섯 번의 재판을 거친 끝에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주범 이 병장에겐 징역 40년이 선고됐다. 공범에 대해선 상해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5~7년 형을 선고했다.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건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채수근 상병이 지난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교 일대 내성천에서 폭우로 실종된 주민들을 찾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수색 중인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고 장화만 신어 '안전불감증'이 지적됐다.
채 상병의 어머니 하 모 씨는 영결식 도중 아들의 영정 사진을 부여잡으며 오열하다 쓰러져 119 구급대의 응급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후 하 씨는 휠체어를 탄 채로 아들의 관에 손을 대며 “사랑해, 우리 아들 사랑해”라고 말하다 관 위로 쓰러져 울었다.
유족에 따르면 채 상병은 전북소방본부 소속 채모 소방위의 아들로, 결혼 생활 10년 차 되던 해에 시험관 시술로 얻은 외동아들에 장손이었다.
채 상병의 부모는 지닌 22일 자필 편지에서 "전 국민의 관심과 위로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진심 어린 국민여러분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며 말문을 열었다.이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수근이가 사랑했던 해병대에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 규정과 수칙 등 근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안전한 임무 수행 환경과 장비들을 갖추는 등 강고한 대책을 마련해서 '역시 해병대는 다르다'는 걸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고 적었다.
국방부와 해병대는 채 상병을 일병에서 상병으로 한 계급 진급 추서했고, 병사 계급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인 광복장을 수여했다.
채 상병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됐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