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내년 축산항 개항 100주년에 거는 기대
2023-12-0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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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축산항 출신 해수부장관 후보
해운수산업에 이론과 실무를 겸비

[영덕=위키트리]박병준 기자=경북 영덕군은 지리적 특성상 삼국시대 신라 영토로 생각하기 쉬우나 고구려가 번성했을 때 오늘날 포항 흥해까지 고구려 영토였으며 영덕은 고구려 우사군이었다.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범이 잦은 지역으로 축산포 죽도는 왜구의 상륙 거점이었으며 축산포로 들어온 왜구는 강원도 춘천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우왕 때 경주 군사 천 명, 안동 군사 천 명을 동원하여 축산포에 만호성을 쌓았으며 오늘날까지 약 100여 미터 성곽이 있다.
역사에는 '이필제의 난'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1871년 3월 10일 동학교도가 포함된 180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영해 관아를 공격하여 탐관오리 부사 이정을 베고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줬지만 관군 진압군에 삼일천하로 끝났다.
을미사변으로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날 때 18세의 나이에 신돌석 장군이 처음 의병을 일으켰고, 평민 출신으로 최초의 의병장으로서 태백산 호랑이로 불리며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1919년 3월 18일 영해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당시 현장에서 사망 8명, 부상 16명을 비롯한 196명이 재판에 회부돼 185명이 실형을 선고한 게 일본 경찰의 기록이며 한강 이남 지역에서 가장 격렬했던 만세운동이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학도병의 혼이 깃든 장사상륙작전과 해병대가 하저상륙작전 즉 오랜 시간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형성된 호국충절의 피와 DNA가 영덕인에게 있다.
영해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영덕, 청송, 영양을 관할하는 부사(府使)가 있던 곳으로 고려말 이색 선생의 외가 조선 숙종시대 남인의 거두인 재령이씨 갈암 이현일 선생의 고향으로 유명하며 퇴계 이황의 학맥이 김성일-장흥효-이현일로 이어져 왔다.
갈암은 장흥효의 외손자로서 삼보컴퓨터 회장 이용태 박사와 소설가 이문열이 그 후손이다.
축산항은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형국으로 8세기 중기 신라 경덕왕 때 청주한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영양남씨 입향시조 유래로 더 유명하다.
삼국시대 이후 왜적의 주 침입로써 조선시대에 수군만호를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했으며 일제시대 때 중국과 러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건설한 곳이다.
축산항과 함께 인근의 대표적 항구인 후포항과 강구항보다 옛날에는 지리적으로 천혜의 항구 조건을 갖춘 축산항이 훨씬 발전했지만 안타깝게 현재 축산항은 옛 명성을 뒤로하고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
지역이 알려지고 발전하려면 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인구소멸 지자체 영덕군에 천재일우 기회로써 이번 개각에 해양수산부장관 물망에 오른 후보가 축산항 출신으로서 내년 개항 100주년을 맞이하는 축산항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해운수산업에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축산항 출신 후보가 반드시 해양수산부장관에 발탁되어 나라와 고향의 발전에 귀한 쓰임이 되길 경북도민은 물론 영덕군민 모두가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