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가 하늘에 있었다" 세월호 '파란 바지 의인' 가슴 아픈 근황

2024-04-1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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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생존자들의 이야기

세월호 생존자들의 근황이 일부 전해졌다.

15일 JTBC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었던 김동수 씨 인터뷰를 보도했다.

김 씨는 '파란 바지 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승객을 구했다.

김 씨는 10년간 트라우마와 싸우느라 고통스러웠다는 얘기를 했다.

제주시 에스중앙병원에 입원했을 때 김동수 씨 / 뉴스1
제주시 에스중앙병원에 입원했을 때 김동수 씨 / 뉴스1

그는 "이렇게 다 뿌옜어요 전체가. (앞이) 1㎞도 안 보이고 몇백 미터 보이는데 출항을 할 거래요"라며 그날을 또 회상했다.

김 씨는 "갑자기 배가 휙 돌면서 그냥 나는 바다 쪽으로 굴러떨어져서…"라고 덧붙였다.

나가야 산다는 걸 직감했다는 김 씨는 "형님, 빨리 가라고. 우리 나가 있어야 구조될 거니까"라고 했다.

배는 빠른 속도로 기울었고 수 미터 절벽이 생겼을 때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믿은 아이들은 미끄러지고 떨어졌다고 한다.

김 씨는 "자판기가 하늘에 매달려 있고. 3층 바닥에는 다친 사람들이 나뒹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팽목항) 방파제에서 추모객들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을 보며 추모하고 있다. / 뉴스1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팽목항) 방파제에서 추모객들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을 보며 추모하고 있다. / 뉴스1

배 밖으로 기어 나왔지만 혼자 떠날 수 없었다고도 했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학생들이 '아저씨 물 차오르면 나갈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김 씨는 소방 호스로 몸을 묶고 아이들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구한 아이들이 스무 명이었다.

김 씨는 "산 사람들이 배 아래, 유리창 아래 가라앉은 것을 다 봤고. 학생은 책장 막 깨면서 나오려고 하지…"라고 회상했다.

구조선과 헬기가 다가왔지만, 수색 대원은 배 안으로 진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옮겨주지도 않고 위에서 손만 잡는 거예요"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뭍으로 나오고 나서야 어깨와 손가락 신경이 망가졌단 걸 느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기억교실에 학생들을 추모하는 기록물들이 놓여 있다. / 뉴스1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기억교실에 학생들을 추모하는 기록물들이 놓여 있다. / 뉴스1

살아서 기쁘기보다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김 씨는 "학생들 그 눈망울까지도 다 기억해요. 일반인 어르신 중 나이 드신 분이 '먼저 나가라'고. 그 메아리까지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경찰서를 왔다갔다하고 구급차에도 실려갔다. 정신병원 폐쇄병동에도 스스로 들어갔었다.

아내 김형숙 씨는 "남편을 범죄자 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아, 저 사람이 아파서 저렇구나.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저럴까..."라고 하소연했다.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