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네이버가 키운 '라인'을 집어삼키려 할까 (사태 시작부터 향후 전망까지)

2024-05-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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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결국 지분 전부나 일부 넘길 것” 전망도
'한일 관계 정상화' 추진한 정부엔 곤혹스러운 이슈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합성 이미지.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합성 이미지.
일본이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는 라인이다. 이용자가 9600만명이나 된다. 카카오톡보다 2배가량 이용자가 많다. 잘 알려진 것처럼 라인은 한국 기업인 네이버가 키웠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라인 운영사인 라인야후에 네이버 의존도를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이러다 라인을 뺏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태가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 라인야후는 어떻게 탄생했나

라인은 네이버가 2011년 일본 자회사인 NHN재팬을 통해 출시한 일본의 국민 메신저다. 월간 이용자 수가 9600만명에 이른다. 2021년 라인을 소유한 네이버와 야후재팬을 소유한 소프트뱅크가 라인과 야후재팬의 경영 통합을 추진해 지난해 10월 라인야후란 회사가 탄생했다. 개발은 네이버 쪽에서, 경영은 소프트뱅크에서 맡기로 했다. 라인야후의 최대 주주는 지분 64.5%를 보유하고 있는 A홀딩스이고, A홀딩스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각각 50%씩 갖기로 합의했다.

■ 사태는 어떻게 시작됐나

지난해 라인에서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불거졌다. 라인야후는 지난해 11월 "라인 이용자와 거래처, 종업원 등 개인 정보 44만 건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제3자가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 부정하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이후 추가 조사를 통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개인 정보 수가 51만여 건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원인은 네이버클라우드 협력사 직원 PC의 악성코드 때문이었다.

■ 일본 정부의 이례적인 개입

일본 정부는 두 차례나 라인야후를 두고 행정지도를 했다. 총무성은 지난 3월 첫 행정지도에서 라인야후가 시스템 개발과 운용, 보수 등을 위탁한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개인 정보 관리를 허술하게 했던 게 정보 유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나섰다. '네이버 영향력 축소'를 압박한 것이다.

일본은 지난달에도 사고 재발 방지책이 불충분하다며 2차 행정지도를 했다고 발표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총무성은 첫 행정지도 이후 라인야후가 제출한 보고서 내용에 네이버에서 네트워크를 완전 분리하는 데 2년 이상 걸린다는 전망과 구체적이지 않은 안전 관리 대책이 담겼단 이유로 분노해 추가 행정지도를 내렸다.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제출한 재발 방지책엔 네이버에서 시스템을 분리하는 작업을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총무성이 요청한 대주주 지분 조정 검토를 요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떼려는 이유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라인야후에 두 차례나 행정지도를 한 이유에 대해 “안전 관리 강화와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 등의 조치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일본 정부가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네이버 의존에서 탈피를 위한 기회로 삼아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지우려 하고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본 정부는 1억명 가까운 일본인이 사용하는 라인을 사실상 공공재로 보고 있다. 실제로 라인은 행정 서비스에도 이용되고 있다. 정보 주권 차원에서 라인야후를 일본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나선 것이다. 집권당 반응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경제안전보장추진본부장은 총무성이 라인야후에 두 번째 행정지도를 한 직후 "플랫폼 사업자는 사기업인 동시에 공공재"라며 "근본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소프트뱅크의 입장

일본 정부까지 나서 거드는 만큼 소프트뱅크는 노골적으로 라인야후를 일본 기업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모회사(A홀딩스) 자본 변경에 대해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가장 많은 지분을 취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시스템 개발) 위탁의 종료는 전부 진행하는 방향으로 가는 만큼 네이버와의 관계는 사업 면에서도 매우 옅어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탈 네이버’ 구상을 대놓고 밝힌 셈. 라인야후는 유일한 한국인 이사였던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를 새 이사회에서 퇴진시키고 구성원 전원을 일본인으로 채웠다.

■ 네이버는 어떤 입장?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네이버가 라인에서 배제되는 것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상황은 미묘하다. 네이버가 A홀딩스 지분을 소프트뱅크에 매각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라인야후에 대한 네이버의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한 총무성의 행정지도를 두고 지난 3일 "따를지 말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중장기적 사업 전략에 기반해 결정할 문제로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라인야후 지분 매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네이버는 라인야후 지분 64.5%를 보유한 A홀딩스 지분을 50% 보유하고 있다. 라인야후 시가총액 약 25조 원 중 32.3%에 이른다. 지분 전부를 매각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10조 원 넘는 돈을 챙길 수 있다. 업계에선 AI 사업 등 차세대 주력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네이버가 A홀딩스 지분을 일본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네이버가 지분 일부를 매각해 경영권을 넘길 수도 있다. NH투자증권 안재민 애널리스트는 7일 보고서에서 "일부 지분 매각으로 네이버와 라인야후의 연결 고리는 유지한 채 2대 주주로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안 애널리스트는 "사업적 관계는 유지하면서 네이버가 몇조 원의 현금을 확보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추가 M&A를 추진한다면 주가에 오히려 긍정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분 협상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CEO는 “(지분 문제를 두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 일본에 지분 넘기는 게 간단하지 않은 이유

라인은 일본뿐 아니라 태국에서도 국민 메신저로 통한다. 전체 인구(약 7000만명)의 대부분(5500만명)이 라인을 이용하고 있다. 대만(2200만명)과 인도네시아(600만명)에서도 인기 있는 메신저다. 지분을 넘기면 아시아 시장 교두보를 잃을 수 있다. 라인야후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지분 재조정이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실제로 네이버가 지분을 넘겨도 일본이 기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일본 언론에서마저 나오고 있다. 네이버는 민간 기업이다. 일본 정부엔 지분매각을 강요할 법적인 명분이 없다.

■ 한국 정부 입장

한국 정부는 한국 기업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라인 야후 문제에 대한 입장은 매우 강경하다면서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을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며 일본 기업을 적극 수호했다.

사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던 윤석열 정부로선 라인야후 사태는 곤혹스러운 이슈다. 구글 프로덕트 매니저 출신 이해민 조국혁신당 당선인은 9일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는 한일 관계 정상화는 '대일 굴종외교'의 다른 이름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라며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 당선인은 "심지어 대한민국 외교부는 일본의 언론 플레이까지 돕고 있다"라며 "'한국 내 반일 여론이 드세니 전화로라도 한국 언론에 오해라고 말해달라'고 총무성에 요청한 게 한국 정부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