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야 알았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걸” 전 은행 부지점장의 뼈아픈 후회
2024-07-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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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못해서 자괴감 느낀다고요? 배부른 소리입니다”

최근 은행권에서 인사발표가 있었다. 승진의 기쁨을 맛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승진 누락의 쓴맛을 본 이들도 있다. 전직 은행원 A 씨가 21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글을 올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퇴사를 고민하는 은행원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걸.
부지점장을 역임하다 몇 년 전 퇴직했다는 A 씨는 은행에 재직하면서 느꼈던 기대와 실망, 좌절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는 은행장 표창도 받았지만 승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동기들 중 꼴찌로 4급 과장으로 승진했을 때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승진 시즌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결혼하고 첫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딱히 다른 기술이 없었기에 은행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견디며 다녔습니다.”
A 씨는 4급으로 승진해 차장을 달고 3급 팀장으로 다시 승진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인사부 결정은 냉혹했다. 승진에서 탈락한 그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일했다. 결국 막차를 타고 승진했지만 그의 은행 생활은 몇 년 뒤 마무리됐다.
A 씨는 인사 정책에 불만을 느끼는 은행원들에게 다른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직은 조직이 잘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 직원은 그냥 부품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조직에 가장 중요한 건 조직의 생존과 번영”이라며 “그러니 ‘조직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따위의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떤 조직도 그런 곳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풀었다.
“조직이 위태롭다 싶으면 오너를 제외한 모두는 아웃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핵심기술이 있으니까...' '나를 대체할 사람은 없으니까...' 따위의 ‘근자감’은 의미가 없습니다. 제 얘기입니다.
은행 퇴직을 결정했을 때 저는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임원으로 그 회사에 갔습니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사람을 뽑고 팀을 만들었습니다. 고생은 많았지만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오래가지 않더군요. 결국 제가 오너가 아니었으니…. 등에 칼이 꽂힌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되더군요. 그리고 실직했습니다. 월급이 계속 안 나오고 통장의 돈을 꺼내쓰기 시작하면 어떤 기분인지 해본 사람만 압니다. 사업을 하다 실패해 가족들 생활비도 못 갔다 주는 지인 얘기 들으면 정말 앞이 깜깜해집니다.”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A 씨는 가장 먼저 '돈'을 체크하라고 조언했다. 퇴직 후의 생계를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막대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부양가족이 있는 이들은 100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킨집, 커피숍 등의 자영업은 만만치 않으며, 90% 이상이 실패한다고 경고했다.
A 씨는 퇴직 후의 일을 최소 5년 전에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주말 알바 등을 통해 직접 경험을 쌓고, 실제로 돈을 벌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녁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 실제로 그 일을 해보고, 직접 가게를 차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은행을 관두기 전에 해봐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돈을 벌어봐야 합니다. 매출액이 아니라 당기순이익을 계산해 봐야 합니다. 이것을 최소 3년 이상 해봐야 합니다. 마라탕, 탕후루처럼 몇 달 반짝하다가 망하는 아이템이 부지기수입니다. 무인 카페도 잘 되는 곳만 되고, 나머지는 월 100만~200만 원 남기기 어려운 곳도 많습니다. 편의점도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점주가 직접 일하는 곳이 많습니다. 본인 월급 정도나 남으면 다행인 곳도 많고요. 아직 은행을 관두기 전이라면 은행 수입이 얼마나 짭짤한 건지 비교가 됩니다. 은행은 심지어 잘리지도 않습니다.”
A 씨는 승진하지 못해 느끼는 좌절감보다 퇴사 후의 실패가 훨씬 고통스럽다는 점을 다음과 강조했다.
“승진을 못 하면 너무 허무하고 자괴감이 든다고요? 퇴사하고 차린 가게가 망하고, 빚이 생기고, 집에 생활비를 못 가져다주면 정말 지옥이 펼쳐집니다. 승진 못 한 자괴감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승진 탈락이나 격지 점포 발령이나 타행보다 낮은 급여, 복지, 정규/비정규 갈등, 일 못 하는 상사, 일 안 하는 동료/후배, 미친 지점장, 답 안 나오는 직원 등등 은행을 다니고 싶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은행에 입행할 때 사실 이런 거 때문에 들어온 거 아니지 않나요? 월급 많이 주고, 잘리지 않고, 복지도 좋아서 들어오지 않았나요?(제가 그래서 남들도 그런 줄 압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들어온 이유는 전부 여전히 유효합니다. 동기가 승진했고, 옆 직원이 단축근무하고, 나만 격지로 발령 내고, 상사가 지랄맞고…. 이런 것들은 내부에서의 '비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비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고. 그래서 은행 밖에 있는 더 많은 사람과 비교를 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가 더 많습니다. 그 친구들 연봉 들으면 정말 작다는 걸 알게 됩니다.”
A 씨는 퇴사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먼저 그는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다면 퇴사하지 말라고 했다. 다음으로 그는 퇴사를 원한다면 최소 5년은 준비하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챙기며, 필요한 경우 정신과의 도움도 받으라고 조언했다.
누리꾼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귀한 이야기”, “인생 선배님의 조언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스타트업 재직자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스타트업은 사람을 데려갈 때는 ‘우리 회사로 오면 잘해주겠다. 임원 시켜주겠다. 창업공신으로 인정하겠다. 워라밸이 균형 잡힌 회사다. 직원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자를 때는 아주 더러운 모습을 보이지요. 대기업은 그래도 자를 때 절차라는 게 있고 쉽게 자르지도 못하잖아요. 나오지도 마시고 스타트업에도 오지 마세요. 임원으로 오신 분들 중에서 커리어 망가진 케이스 여럿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