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향년 78세로 별세... 전태일 평전 탄생에 결정적 역할 담당한 운동권 대부
2024-09-2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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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담낭암 투병 밝힌 지 2개월 만에...
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담낭암으로 투병 중이던 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 35분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두 달 전인 지난 7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담낭암 말기 진단을 받은 사실을 밝히며 투병 중임을 공개했다. 그는 "건강이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도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정말 죄송하다"고 글을 남겼다.
장 원장은 1945년 경남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마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학업은 1995년에야 마칠 수 있었다.
장 원장은 서울대학교 학생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1970년대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비롯해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에 연루돼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당시 그는 숱한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면서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받지 않았다.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국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보상금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 원장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 이후 전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만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 학생장을 맡아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이후 그가 전 열사의 자료를 수집해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장 원장은 2009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소선 여사와 오랫동안 도봉구 쌍문동에서 함께 살며 노동운동을 도왔다.
1980년대부터는 재야 운동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1984년 그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한 민주통일국민회의 창립에 기여했으며, 이후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와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의 통합을 이끌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진보 정당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0년에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며 진보정당 운동을 이끌었고,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 여러 정당을 창당했다.
장 원장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총선과 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21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후보로 출마했지만 역시 낙선했다. 이후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인 가락당에 합류해 22대 총선에 도전했으나 원내 입성에는 실패했다.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장 원장은 제도권 정치에 입성하지 못했지만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하며 '영원한 재야 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까지도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운영하며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며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 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해왔다.
그는 2023년 1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일생의 목표는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 씨, 보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된다. 조문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