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위스키에 이것 3알만 넣어보세요... 고급 위스키 됩니다”
2025-06-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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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싼 위스키 사 마실 필요 없다?

“12년산 위스키에 미원 몇 알만 넣으면 25년산 맛이 난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2019년 SNS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펴며 "12년 위스키에 조미료를 아주 소량, 몇 알갱이 넣으면 바로 25~30년짜리 맛이 나니까 굳이 상급 위스키를 사 마실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정 부회장 주장이 최근 SNS를 통해 다시 화제를 모으자 유명 술 유튜브 채널 ‘술익는집’이 직접 실험에 나섰다. 저가형 술에 미원을 넣으면 정말 고급 술의 맛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술익는집’은 이 궁금증을 파헤치기 위햐 위스키, 소주, 사케, 막걸리까지 다양한 술에 미원을 넣고 그 효과를 분석했다.
‘술익는집’은 실험을 위해 꼼꼼하게 준비했다. 먼저 미원의 주성분인 MSG(L-Monosodium Glutamate)에 대해 설명하며 실험의 과학적 배경을 다졌다. MSG는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원당이나 당밀을 코리네박테리움 글루타미쿰(Corynebacterium glutamicum)이라는 미생물로 발효해 만든 글루탐산을 나트륨과 결합해 결정화한 것이다. 이 성분은 육류, 어류, 유제품, 채소, 해조류 등 다양한 식품에 들어있는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다. MSG에 대해 설명하며 MSG가 술에 풍미를 부여할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실험의 메인은 위스키였다. 특히 짭짤하고 스모키한 피트 위스키가 미원과 잘 어울린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술익는집’은 탈리스커 10년(6만~7만 원)과 탈리스커 25년(70만~80만 원)을 준비했다. 두 위스키를 비교하며 미원의 효과를 확인하려는 계획이었다. 탈리스커 10년에 미원 4알을 넣고 섞은 뒤 원래의 10년산, 미원 첨가 10년산, 그리고 25년산을 차례로 시음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미원을 넣은 10년산은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피니시(여운)가 길어지며 맛이 두터워졌다. 다만 25년산의 깊고 차분한 풍미와는 여전히 차이가 있었다. ‘술익는집’은 이를 현대자동차 모델들에 비유했다. 원래 10년산은 쏘나타, 미원 첨가 10년산은 그랜저, 25년산은 G90에 해당한다고 표현했다. 미원이 맛을 고급지게 만들긴 했지만 숙성의 세월이 주는 뉘앙스는 따라잡지 못한다는 결론이었다.
다음은 소주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선양오크(도수 14.9%)에 미원 4알을 넣어 비교했다. 오크통 숙성 원액 11%가 포함된 선양오크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하지만 미원을 넣자 오히려 느끼한 맛이 추가돼 기대했던 만큼의 조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술익는집’은 선양오크에 미원이 잘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위스키 실험을 더 확장하기 위해 1만원 미만 저가형 위스키인 블랙앤화이트에 미원 3알과 설탕을 넣어 시바스리갈 15년과 비교했다. 블랙앤화이트에 조미료를 추가하자 맛이 확실히 부드러워지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바스리갈 15년과 직접 비교하자 체급 차이가 명확했다. ‘술익는집’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유튜버 모임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블랙앤화이트, 미원과 설탕을 추가한 블랙앤화이트, 시바스리갈 15년을 각각 A, B, C로 나눠 시음했다. 대부분은 C(시바스리갈 15년)가 고급 위스키임을 알아챘고, B(미원+설탕)가 A보다 맛이 낫다고 느꼈다. 저가형 위스키에 미원과 설탕을 넣으면 맛이 개선되지만 고급 위스키의 깊이를 완전히 따라가진 못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사케 실험도 흥미로웠다. 쌀을 덜 도정한 사케와 오래 보관해 산화된 사케에 미원을 넣어 비교했다. 쌀을 덜 도정한 사케는 미원을 넣자 중간 맛이 두터워지고 여운이 길어졌다. 특히 산화로 힘이 빠진 사케는 미원 서너 알을 넣자 중간 맛이 채워지며 풍미가 살아났다. ‘술익는집’은 오래된 사케를 마실 때 미원을 소량 추가하면 맛을 보완할 수 있다고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막걸리였다. ‘살맛나네’ 막걸리에 미원을 넣어 비교했지만, 이 막걸리는 원래부터 텍스쳐가 두껍고 향이 강해 미원의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숙성된 막걸리는 이미 글루탐산 함량이 높아 감칠맛이 충분하기에 미원을 추가해도 큰 변화가 없었다.
‘술익는집’은 이번 실험을 통해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피트 위스키, 특히 탈리스커 10년이나 하트 브라더스 같은 보급형 위스키에 미원 서너 알을 넣으면 맛이 두터워지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더해진다. 오래된 사케에도 미원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소주나 숙성된 막걸리에는 미원이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