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6900마리뿐인데…홀연히 인천 갯벌에 나타난 '멸종위기 동물'

2025-06-1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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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찾아 이동 중 일시적으로 머무른 것으로 보여
지난 5월 노루섬에서 총 320마리 서식 포착되기도

전 세계에 단 6,9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국제적 멸종위기종 ‘저어새’가 최근 인천 영흥도의 갯벌에서 홀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포착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인천 영흥도 / Seung Ha Kim-Shutterstock.com
인천 영흥도 / Seung Ha Kim-Shutterstock.com

저어새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에만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류로, 환경부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모두 최고 등급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고 있는 새다. 국내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05-1호로 보호되고 있다.

연합뉴스TV에 따르면 저어새 한 마리는 지난 15일 오후 3시쯤 인천 영흥도 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관찰됐다. 숟가락처럼 넓적한 부리를 좌우로 흔들며 갯벌을 누비는 모습은 저어새 특유의 먹이 습성을 잘 보여준다. 단독 행동을 하고 있던 이 개체는 번식지를 벗어나 일시적으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며, 계절적 이동 또는 먹이 확보를 위한 분산 행동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인천녹색연합 박주미 사무처장은 “저어새는 일반적으로 3월부터 10월~11월까지 인천 인근에서 관찰되며, 이후 제주도와 일본, 대만 등으로 이동하는 여름 철새”라며 “이번 개체는 먹이를 찾아 이동 중 영흥도 갯벌에 일시적으로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천연기념물 205-1호이며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전남 순천만 습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기사와 무관 / 뉴스1(순천시 제공)
천연기념물 205-1호이며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전남 순천만 습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기사와 무관 / 뉴스1(순천시 제공)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이 단순한 탐조 사례를 넘어, 인천 연안 생태계의 보전 가치와 저어새 서식지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저어새는 서식지에 매우 민감한 조류로, 인위적 교란이나 서식지 파괴에 취약하다. 특히 번식과 휴식에 적합한 무인도나 조용한 갯벌이 줄어들면서 전 세계 개체 수는 한때 1,000마리 이하로 급감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 서해안을 중심으로 보호 노력이 강화되면서 개체 수가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7,000마리도 되지 않는 전 세계 개체 수는 저어새가 직면한 위기의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발표된 충남 서천군 노루섬의 저어새 서식 실태는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는 자료로 주목된다.

최근 서천군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충남연구원이 공동 실시한 모니터링에 따르면, 지난 5월 노루섬에서는 총 320마리의 저어새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이는 지난 2020년 첫 조사 당시의 84마리 대비 약 4배가 증가한 수치로, 서식지 관리와 보호가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전 세계 개체 수의 약 5%가 노루섬에 서식 중이라는 것은 세계적 보전 관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노루섬 전경 / 연합뉴스, 서천군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제공
노루섬 전경 / 연합뉴스, 서천군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제공

노루섬은 서천군 마서면 앞바다에 위치한 무인도로, 총면적 3,161㎡에 불과하지만 생태적 가치는 매우 크다. 저어새뿐 아니라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매 등 다수의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조류들이 함께 서식하는 복합 생물다양성 지역이다.

이번 영흥도에서의 단독 관찰 사례는 이처럼 잘 알려진 서식지 외에도 저어새가 광범위한 연안 생태계를 활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정착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머무는 개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관된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어새는 그 특유의 외형으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종이다. 눈 주변과 얼굴은 검은색, 몸통은 새하얀 깃털로 덮여 있으며, 머리 뒤로는 길게 늘어진 장식깃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부리 끝이 숟가락처럼 넓고 납작한 모양을 하고 있어 ‘Spoonbill(숟가락부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저어새는 주로 얕은 갯벌에서 소형 어류나 갑각류를 부리로 훑듯이 걸러 먹으며, 먹이활동과 번식 모두에 서식지의 청정성과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한 마리 저어새가 서식지에 적응하기까지는 주변의 생태환경, 인간 활동, 먹이 자원 등의 조건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최근 연안 개발과 기후 변화, 해양오염 등은 이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섬 구지도에서 저어새가 서식하고 있다. (옹진군청 제공)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섬 구지도에서 저어새가 서식하고 있다. (옹진군청 제공)

이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생태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저어새가 홀로 인천 영흥도의 갯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자연의 한 조각을 마주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단순한 관찰로 넘기지 말고, 인천 연안의 생태적 가치와 보호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전국의 저어새 주요 서식지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조치와 지역사회와의 협력 기반 구축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튜브, KBS News

갯벌 위를 유유히 거닐며 숟가락 모양의 부리를 흔들던 저어새 한 마리. 그 작고 고요한 생명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아직, 지켜야 할 것들을 다 지키지 못했다.

구지도에 둥지 튼 저어새들 / 뉴스1(옹진군청 제공)
구지도에 둥지 튼 저어새들 / 뉴스1(옹진군청 제공)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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