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배우가 영화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아 사람들 당황하게 하는 영화
2025-06-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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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사가 하나도 없는 기이한 영화
주인공을 맡은 주연 배우가 끝까지 등장하지 않아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든 영화, 관객들이 괴물처럼 울부짖으며 극장을 뛰쳐나간 영화. 미국에서 극단적인 관객 반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사스콰치 선셋'이 다음달 2일 개봉한다.
데이비드·네이선 젤너 형제 감독이 연출한 '사스콰치 선셋'은 수컷 세 마리와 암컷 한 마리로 이뤄진 털북숭이 괴물 사스콰치 가족의 사계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빅풋(Bigfoot)'으로도 불리는 사스콰치는 장신에 온몸이 털로 뒤덮인 북미의 전설 속 동물이다. 인간처럼 직립보행을 하고 깊은 숲에 숨어 산다고 전해지지만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드 소마'(2019),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등 괴작(怪作)으로 유명한 아리 애스터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주연은 제시 아이젠버그와 라일리 키오다.
그런데 '사스콰치 선셋'을 관람한 미국 관객들은 대부분은 같은 궁금증에 빠져야 했다. ‘대체 제시 아이젠버그는 언제 나오는 거야?’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아이젠버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젠버그와 키오는 작품에서 인간이 아닌 사스콰치를 맡았다. 영화에서 아이젠버그와 키오의 맨 얼굴을 볼 수 없는 이유다.
해외 언론들은 이런 관객들의 당황한 반응을 주목하며, 아이젠버그와 키오가 사스콰치로 변신하기 위해 맞춤 제작된 보디수트와 여러 층의 특수 분장을 착용했으며, 의상과 메이크업 적용에만 매일 최대 2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시각 효과 아티스트 스티브 뉴번이 아이젠버그와 키오 같은 배우들을 생생한 미지의 생물체로 바꾸는 특수분장 작업을 담당했다는 점도 강조됐다.
키오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열린 '사스콰치 선셋' 상영회에서 맨 얼굴의 아이젠버그를 만났을 때 처음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왜냐하면 나는 그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메이크업 트레일러에 가서 사스콰치 얼굴을 착용했고 그것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젠버그는 강렬한 메이크업 때문에 카메라가 자신의 표정를 감지할 수 있도록 과장된 연기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얼굴 근육의 미묘함을 포착하는 영화와 비교해 평소보다 10%나 30% 더 연기해야 한다. 과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젠버그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등장한다. 하지만 털북숭이 괴물 사스콰치의 외형을 하고 연기한 탓에 관객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젠버그를 비롯한 배우진은 모두 특수분장으로 원래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네이선 젤너 감독도 우두머리 수컷 역으로 출연해 몸소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젤너 형제의 카메라는 1년 동안 숲을 돌아다니는 사스콰치 가족을 따라다닌다. 영화를 통틀어 단 한 줄의 대사도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해외 언론들은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크리처 수트와 함께 진정으로 이전에 본 적 없는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작품에서 사스콰치들은 "우어어", "아악", "우웅" 하는 울음소리로 의사소통한다. 발을 구르고 팔을 허공에 휘젓는 제스처는 감정 표현의 수단이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이들의 삶은 야만적이고 역겹다. 본능에 따라 아무 곳에서나 짝짓기나 배변을 하는 모습, 이름 모를 열매와 버섯, 벌레를 먹는 모습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들의 외모가 인간과 비슷해 마치 치부를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영화에 변화가 일어나는 건 사스콰치 가족이 아스팔트 도로 등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는 중반부부터다. 그때부터 서서히 감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인간 관객의 시각으로 사스콰치를 봤다면 이때부턴 사스콰치가 관찰하는 인간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스콰치에게 문명사회는 너무나 기이하다. 멀쩡한 나무를 잘라 누군가를 깔려 죽게 하고 울창한 숲을 태워 버린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렸는데도 공장에서 만든 가공식품을 섭취하고, 캠핑을 와서도 아름다운 새소리 대신 시끄러운 록을 듣는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스콰치들의 가족애다. 인간처럼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이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한 장면 한 장면에서 느껴진다. 아무리 의견이 맞지 않아도 폭력을 쓰는 법이 없다. 생존을 위한 목적이 아니면 결코 살생도 하지 않는다. 사스콰치가 인간보다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해외 언론들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일부는 웃음을 터뜨리며 의자에서 굴러떨어졌고, 또 다른 관객들은 사스콰치처럼 울부짖으며 극장을 뛰쳐나갔다고 한다.
적나라한 사스콰치의 묘사와 일부 엽기적인 장면으로 인해 이 작품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듯하다. 그러나 실험적 작품에 단련된 관객이라면 일반 영화에서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깊은 감동을 느낄 것 같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영화. 대사가 없어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얼굴 표정 없이도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