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바닥에 드글드글…암컷으로 살다 수컷으로 변한다는 '이 생명체'
2025-10-0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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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을 허물고 굴을 파는 습성 띄어
논과 웅덩이의 진흙 속을 휘젓고 다니는 신비한 어류가 있다.

바로 드렁허리 이야기다. 이름처럼 논두렁을 허물고 굴을 파는 습성 때문에 '두렁헐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뱀처럼 길고 가느다란 몸매에 비늘 없이 매끈한 점액질 피부를 가진 이 생물은, 예로부터 농촌의 논바닥과 수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민물고기였다.
◆ 논장어의 놀라운 생태적 비밀
더욱 놀라운 것은 드렁허리의 성(性) 전환이다. 알에서 부화한 후 2년까지는 모두 암컷으로 살아가다가, 3년째부터 수컷으로 성이 바뀌기 시작하여 6년쯤 되면 완전한 수컷이 된다. 이는 국내 민물고기 중 유일한 성 전환 현상으로, 개체군 내의 성비를 스스로 조절하는 매우 희귀한 생태적 특징이다. 산란기가 되면 수컷이 진흙 속에 굴을 파고 알을 낳게 하며, 새끼들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입에 넣어 보호하는 부성애 또한 드렁허리의 신비한 생태의 일부이다.
◆ 동의보감이 기록한 약재

우리나라에서 드렁허리는 오랜 세월 약용과 조혈제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시대의 의서인 《동의보감》은 드렁허리에 대해 "성질이 따뜻하고(大溫) 맛이 달며 독이 없다"라고 기록했다.
장어가 기력을 보충하는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면, 드렁허리 역시 그 활력이 이에 못지않아 논밭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천연 원기충전제로 취급되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지금도 드렁허리를 고급 요리 재료로 활용하지만, 한국에서는 예부터 '선탕(鱓湯)'과 같이 드렁허리를 푹 고아 먹는 방식을 통해 약재처럼 귀하게 소비해 왔다.
◆ 사라져 가는 논두렁의 귀한 손님
과거 논과 저수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드렁허리는 오늘날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농수로가 콘크리트화되고, 농약과 비료 사용 증가 및 각종 폐수 유입으로 인해 서식 환경이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수질에 매우 강해 3급수에서도 살지만, 개발로 인한 서식지의 파괴는 드렁허리의 생존에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