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캐스팅 작품 모두 제치고…공개 직후 넷플릭스 1위 오른 ‘한국 영화’
2025-10-12 07:30
add remove print link
층간소음이 만든 공포의 심리 실험
지난 9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한국 영화 ‘노이즈’가 공개 하루 만에 국내 1위 자리에 올랐다. ‘사마귀’, ‘길복순’, ‘야당’ 등 거대한 제작비와 화려한 배우진으로 주목받은 경쟁작들을 모두 제치고 정상에 올라 특히 눈길을 끈다. 대형 제작사나 톱스타가 아닌, 현실적 소재와 긴장감 있는 연출로 승부해 성공한 ‘노이즈’다.

‘노이즈’는 김수진 감독 장편 데뷔작으로, 층간소음이라는 일상적인 문제를 심리 스릴러와 공포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선빈, 한수아, 김민석, 류경수 등 젊은 배우들이 주연으로 참여했다. 제작비 37억원 정도로 크지 않지만, 섬세한 음향 설계와 현실감 넘치는 공간 연출로 완성도를 높였다. 러닝타임은 약 90분, 15세 관람가로 설정됐으며, 짧고 밀도 높은 서사로 관객들 몰입을 끌어냈다.
이 영화는 지난 6월 25일 국내 개봉 당시에도 이미 17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개봉 전 이미 117개국에 선판매됐고, 시체스 국제영화제를 포함한 7개 해외 영화제에 초청돼 현대 사회의 불안을 가장 세련되게 형상화한 한국형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실에서 출발한 공포…층간소음이 만든 심리 스릴러
‘노이즈’ 서사는 단순하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의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두 자매 주영(이선빈)과 주희(한수아). 처음에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위층과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반복적인 소음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주희는 매일같이 울리는 쾅쾅거림과 삐걱거림에 극심한 불안을 느끼며 점점 현실 감각을 잃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언니 주영은 지방 공장에서 일하던 중 동생의 실종 소식을 듣고 급히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아파트는 이미 무너져가는 공포의 무대다. 이웃들은 모두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울음소리, 지하실에서의 이상한 진동, 어디선가 계속 들려오는 소리가 그녀를 괴롭힌다. 주영은 동생 행방을 찾기 위해 아파트 곳곳을 뒤지며 점점 진실에 다가가지만, 그 과정에서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무너진다.
김수진 감독은 이 영화에서 소리를 단순한 효과음이 아닌 서사적 장치로 활용했다. 층간소음이라는 현실적 문제는 결국 인간 내면의 불안과 단절, 공동체 붕괴를 상징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소리는 점점 왜곡되고, 관객은 그것이 실제인지 주인공의 심리적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소리가 만든 공포”…연출과 배우들의 집중력
‘노이즈’가 호평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일상 속 공포를 현실감 있게 끌어올린 연출에 있다. 김수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서 층간소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관계의 붕괴를 상징하는 소리”라며 “그 경계를 넘나드는 심리를 공포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선빈은 주영 역을 통해 기존의 밝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극단적인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동생을 잃은 죄책감과 공포,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불안감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그의 표정과 눈빛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한수아는 불안과 공포로 무너지는 주희를 연기하며, 현실의 층간소음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류경수는 미스터리한 아랫집 남자로 등장한다. 그의 등장은 언제나 소음과 함께 시작되고, 말수가 적은 표정 연기만으로 긴장을 높였다. 특히 후반부, 주영이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공포의 순간으로 꼽힌다. 김민석은 경찰 기훈 역으로 등장해 사건의 외곽을 좇으며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더한다. 그는 단순한 조연이 아닌,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주영의 심리적 대조 역할을 맡았다.

‘노이즈’가 보여준 한국 영화의 가능성
대규모 자본과 화려한 스타가 아닌, 한정된 공간과 ‘소리’ 하나로 긴장을 쌓아 올린 영화 ‘노이즈’. 그 정교한 사운드, 인간 심리를 꿰뚫는 서사, 현실의 공포를 스크린 위로 끌어올린 감각 등이 한국 관객들 마음을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