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 넘어설 줄 알았는데... 한국농부 98%가 재배 포기한 고급 과일

2025-11-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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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포도 주산지에서조차 자취 감춘 포도의 정체

샤인머스캣 / 뉴스1
샤인머스캣 / 뉴스1

한때 '샤인머스캣을 넘어설 유일한 품종'으로 주목받았던 포도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가가 재배를 포기하고 결국 나무를 베어냈다. 나무가 한국의 뜨거운 여름 야간 기온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국 포도 주산지에서조차 자취를 감춘 이 포도의 이름은 블랙사파이어다.

최근 '팜코리아'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영상에는 98%의 농가가 손을 놓은 블랙사파이어를 고집하는 농부의 이야기가 담겼다. 영상에서 농부는 "왜 수입산처럼 새까맣지 않나"라는 소비자들의 오해와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 속에서도 자연 그대로의 검붉은색 블랙사파이어 포도를 지켜내고 있었다.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블랙사파이어는 최근 몇 년간 국내 포도 시장에서 큰 기대를 모았던 품종이다. 샤인머스캣이 국내 포도 시장을 장악한 뒤 농가들은 새로운 프리미엄 품종을 찾았다. 블랙사파이어는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색상이 진하고 당도가 높은 데다 씨까지 없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재배 현실은 가혹했다. 블랙사파이어는 원산지의 기후 조건에 최적화된 품종이었고, 한국의 여름 환경은 이 포도에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특히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한국의 열대야 현상은 블랙사파이어에 치명적이었다. 포도는 밤 시간 동안 낮에 축적한 영양분을 열매에 저장하고 당도를 높이는데, 야간 고온은 이 과정을 방해했다.

블랙사파이어는 '가지포도'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독특한 형태를 지녔다. 일반 포도처럼 둥근 송이가 아니라 가지처럼 길쭉하게 뻗은 형태로 자란다. 이런 독특한 외형 때문에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 때문에 구매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이 농부는 재배 과정에서 일부러 송이 무게를 2kg에서 400g으로 대폭 잘라낸다. 포도알 하나하나에 영양분을 집중시켜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적과(摘果) 작업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요구한다. 하나하나 손으로 포도알을 솎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18~23브릭스의 높은 당도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포도의 당도는 15~18브릭스 정도면 충분히 달다고 평가받는데, 이 농부의 블랙사파이어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농가들이 블랙사파이어 재배를 포기한 이유는 명확했다. 낙과 현상과 고온 피해가 치명적이었다. 낙과란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는 현상이다. 블랙사파이어는 특히 이 문제에 취약했다. 한국의 여름철 높은 야간 기온은 블랙사파이어에게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고, 이는 대부분의 농가가 재배를 중단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투자 대비 수확량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농가들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수 없었다.

샤인머스캣과 블랙사파이어의 맛 차이도 영상에서 다뤄졌다. 샤인머스캣은 청포도 특유의 상큼함과 머스캣 향이 특징이라면, 블랙사파이어는 진한 과즙과 높은 당도가 장점이다. 식감도 다르다. 샤인머스캣이 아삭한 느낌이라면, 블랙사파이어는 좀 더 부드럽고 즙이 많은 편이다. 맛의 방향성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블랙사파이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그 진한 단맛과 풍부한 과즙을 이유로 꼽는다.

영상 속 농부는 착색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검붉은색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수입산과 비교하며 색깔이 연하다고 지적해도 인위적인 착색 대신 자연 그대로의 색을 고집했다.

착색제를 사용하면 포도를 더 검게 만들 수 있고, 시각적으로 수입산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다. 시장에서는 더 검은 블랙사파이어가 높은 가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농부는 자연스럽게 익은 포도의 본래 색깔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검붉은색이야말로 한국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재배된 블랙사파이어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다.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농부는 영상에서 잘 익은 포도를 구별하는 방법도 공개했다. 줄기 색깔을 보면 된다는 것이다. 줄기가 갈색으로 변하면 포도가 충분히 익었다는 신호다. 많은 소비자가 포도알의 색깔만 보고 익은 정도를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줄기의 상태가 더 정확한 지표가 된다.

농부는 보관 시 절대 씻어서 보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물기가 남으면 포도가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먹기 직전에 필요한 만큼만 씻어서 먹는 것이 좋다. 포도 표면의 하얀 분은 과분이라 불리는 천연 물질이다. 신선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많은 소비자가 이 하얀 분을 농약이나 오염 물질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포도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보호막이다. 과분이 많이 묻어 있을수록 신선한 포도라고 볼 수 있다.

수입산과 국내산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수입산은 방부제 처리와 후숙 과정을 거치는 반면 국내산은 이런 과정 없이 신선하게 유통된다는 것이다. 수입산 포도는 장거리 운송을 위해 덜 익은 상태에서 수확해 운송 중이나 도착 후에 후숙한다. 또한 장기 보관을 위해 방부제 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산은 나무에서 충분히 익힌 후 수확해 바로 유통하기에 더 신선하고 당도도 높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이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에 대해 농부는 솔직하게 답했다. "6억 원을 투자했지만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높은 초기 투자 비용과 낮은 수확량, 그리고 까다로운 재배 조건이 결합돼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억 원의 투자금은 시설 구축, 묘목 구입, 재배 시스템 마련 등에 사용됐다. 하지만 블랙사파이어의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재배 난이도 때문에 투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블랙사파이어 / '팜코리아'

일반 소비자가 보기에는 가격이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그 가격으로도 생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품종이 아니기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도 없다. 농부는 "쫓겨나게 생겼다"는 표현을 사용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농부의 농법도 특별했다. "제 농장엔 퇴비가 없다"고 밝힌 그는 소똥이나 닭똥 같은 일반적인 퇴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호밀을 재배하고 지렁이가 살아있는 땅의 힘만으로 포도를 키운다. 자연순환농법을 실천하며 땅 자체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호밀은 겨울 동안 농장에 심어져 자라다가 봄에 토양 속으로 환원된다. 이 과정에서 토양의 유기물 함량이 높아지고 토양 구조가 개선된다. 지렁이는 이렇게 풍부해진 유기물을 먹고 배설하면서 포도나무가 흡수하기 쉬운 형태의 양분을 만들어낸다. 화학비료나 동물 퇴비에 의존하지 않고도 건강한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이유다.

이런 농법은 환경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큰 부담이 된다. 토양이 건강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초기 몇 년간은 수확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부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영상 말미에서 농부는 자신의 도전이 쉽지 않음을 인정했다. 5년간 재배하면서 블랙사파이어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체감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5년째 블랙사파이어 재배를 이어가고 있다. 98%가 포기한 포도를 지키기 위한 농부의 외로운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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