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우리은행 노조위원장 선거…‘다시 한번’ vs. ‘바꿉시다’

2025-11-1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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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9000여명…내달 2일 1차 투표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 우리은행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 우리은행

3년 임기의 우리은행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가 시작됐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후보자가 3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인 판세는 박봉수(49) 현 위원장과, 몇 해 전 그와 결별하고 출마한 이동혁(43) 서울 양평동지점 차장이 양강 구조를 형성한 가운데, 2022년 선거에 도전했던 최인범(46) 전 우리사주조합장이 1중으로 역전을 노리고 있다.

이동혁 후보는 지난 선거에서 노조 개혁을 외치며 10.8%를 득표해 돌풍을 일으킨 이강산 둔촌동지점 차장을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영입, 단일화에 성공했다. ‘다시 한번’을 외치는 박봉수 후보와 ‘바꿉시다’를 주장하는 이동혁 후보가 격돌하게 된 양상이다. 자연스럽게 이동혁 후보 진영의 단일화가 어느 정도 파괴력을 보이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우리은행 노조는 다른 은행 노조보다 은행 경영에 대한 발언권이 강하다. IMF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 기존 은행들을 통폐합해 출범한 역사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가 갖고 있는 지분을 완전히 정리한 건 2021년이다. 또 우리사주조합이 8.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우리사주조합이 경영에 개입하지 않지만, 노조의 영향력에 있는 이상 경영진 입장에서 노조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은행은 오랫동안 실질적인 정부 소유 금융회사였기 때문에, 임금이나 복지 측면에서 경쟁 은행 대비 뒤처져 있었다.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서거나 비은행 자회사를 확보하는 모습도 덜했다. 이 때문에 4대 은행 내에서 매출, 이익 순위가 계속 내려갔다. 반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이란계 자금 횡령 사고 등 대형 사고가 잇따랐다.

2023년 한 사업부 부장이 내기 골프로 금전을 갈취하고, 돌아가면서 김밥을 싸 오도록 강요하는 갑질 사건 등이 폭로되는 등 금융 사고 이외의 여러 문제도 얼룩졌다.

노조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 박봉수 위원장은 사내 행사비를 과다 결제한 뒤 현금을 돌려받는, 이른바 ‘페이백’ 의혹 등 횡령·배임·배임수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다시 한번” “딱 맞는 선택”…재신임 요구 박봉수 후보

재선에 나선 박봉수 후보는 지난 3년 간의 성과를 전면에 내걸었다. 선거 캠프 명칭이 ‘다시 한번 박봉수 캠프’라는 것이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선거 슬로건도 2022년 사용했던 ‘내 삶에 딱 맞는 노동조합’과 거의 동일한 ‘딱 맞는 선택, 더 나은 미래’다.

박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실질 급여 인상, 복지 확대, 근무 환경 개선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 냈다”고 자평했다. 특히 연간 우리사주 180만원, 복지포인트 480만원, 개인연금 360만원 등으로 현금성 복지 연 1000만원 시대를 연 것을 대표적인 치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박 후보는 복지포인트와 우리사주지원금 등을 연 1000만원어치 늘려 연간 복지 2000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 현재 영업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개인금융팀과 관련해 업무별 인원을 확충해 업무 구분을 명확히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점포 대형화, 영업점 TO 방식 혁신, 신입 직원 채용 등으로 인원 부족 현상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미혼 직원 복지 확대, 장기근속 휴가 확대, AI(인공지능) 디바이스 2회 지급 등 생활 밀착형 공약도 내놓았다.

박 후보는 현직 위원장이라는 게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약점으로 지적되는 사안이다.

한 우리은행 관계자는 “결국 박 후보가 지난 3년간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직원들에게 어떻게 평가받는지가 핵심인 선거”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노조 활동을 해온 사람들 사이에선 ‘진주고 독식’에 대한 반발도 나온다. 진주고 선후배 사이인 김경우 수석부위원장도 이번에 또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횡령·배임·배임수재 혐의로 받고 있는 경찰 수사도 적잖은 변수다. 검찰 송치 결정이 날 경우 치명타가 불가피하다. 노조가 우리사주조합 조합장 선출 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한적이나마 대주주 역할을 하는데, 경찰 수사받는다는 사실부터 우리금융지주 경영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조를 바꿔 은행을 바꿉시다”…개혁 강조 이동혁 후보

이동혁 후보는 “바꿔야 바뀝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노조 개혁을 통해 “행동하는 강한 노조”를 만들겠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임금, 복지뿐만 아니라 근로환경, 인사, 연수, 성과 보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 후보의 주장이다. “지난 3년 간의 은행에서의 삶에 만족하셨느냐”, “경영진이 회사를 엉망으로 운영하는데 제대로 견제도, 싸우지도 못하는 노동조합이다”라는 공격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 후보는 당선 즉시 직원들에게 특별격려금 1000만원을 지급하고, 복지카드 한도를 월 100만원으로 늘리겠다고 하는 등 처우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와 함께 개인금융팀을 전면 폐지하고, 영업 실적에 도움 되지 않은 데 뒤따르는 잡무가 많은 몇몇 집단 대출 및 연금·보험 업무를 업무 집중화 센터를 통해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사평가제도 개선, 휴직·병가·출산 휴가에 따른 인력 공백에 대한 대책, 장기 근속자에 대한 휴직 및 휴가 제도 등 근로 환경 개선과 관련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특징이다.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이 후보가 지난 2월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직원들을 만나면서 다져온 표밭이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노조 관계자 중에서 박봉수 현 위원장과 결별하고 이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거나, 지지를 표명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2023년 박 위원장 취임 당시 함께 집행부를 구성했던 인원의 절반 이상, 3분의 2에 못 미치는 인원이 이 후보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고 한 노조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 후보부터 현 노조에서 본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지난 선거에서 2위를 한 김창열 후보 쪽 조직 등 노조 내 주요 계파들이 일찍부터 캠프에 합류한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2022년 선거에서 단기필마로 출마해 10.8%를 득표한 이강산 둔촌동지점 차장이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합류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수석부위원장 후보는 “경영진을 견제하고 회사에 돈을 투입되게 하는 것도 노동조합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지난 1달간 전국 영업점을 돌며 했던 약속을 꼭 지키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조 관계자는 “이전 선거에서 출마한 후보 출신이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될 경우, 해당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대단히 올라간다는 게 역대 우리은행 노조 위원장 선거의 속설 중 하나”라고 말했다. 대구 출신인 이동혁 후보와 광주 출신인 이강산 후보가 함께하면서 부산·경남 중심인 박봉수 후보 진영과 지역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직원을 VIP 직원으로 섬기겠다”…최인범 후보

최인범 후보는 “직원들을 VIP 고객으로 섬기겠다. 노동조합을 조합원을 위해 다시 일하게 하겠다”라며 ‘직원을 섬기는 노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박 위원장이 직원들에게 고압적이고,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팽배해있다는 것을 의식해, 이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출마 선언문에서 “불공정은 분노를 낳고, 불통은 불신을 만든다”라며 박 위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 최 후보는 “일 잘하는 직원”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오랫동안 우리사주조합장으로 재직하면서 “저가 매수한 주식이 이제 여러분의 가계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실적을 강조한다. 그는 성과급 500%, 꿀머니 500만원, 우리사주 500주를 묶어 ‘트리플 500’이란 공약을 내세웠다. 또 지점 업무를 경감해 돈되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근로조건 개선을 약속했다.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최 후보가 어느 정도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관심이다. 그 경우 박봉수, 이동혁 두 후보의 표밭을 각각 얼마나 잠식할지에 따라 선거 구도가 적잖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 후보는 2022년 9대 위원장 선거에서 5.4%를 득표했다.

한편 우리은행 노조위원장 선거는 내달 2일 1차 투표를 실시한다. 여기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한다. 유권자는 9000명 정도다. 지난번 선거에서는 6명이 출마했으며, 결선 투표 끝에 박 현 위원장이 당선됐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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