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사 먹지…작년보다 40%나 싼데 엄두 못 내는 ‘국민 과일’ 정체
2025-11-1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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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가격 뚝뚝, 왜 소비자는 관심 없을까?
제철 감귤, 저렴해도 소비자 마음은 얼어붙어
지난해 유독 가파르게 뛰었던 배·포도·감귤 등 주요 과일 가격이 올해는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소비 회복세가 더디면서 도매 시장 곳곳은 여전히 썰렁한 분위기다. 가격은 확실히 내려왔는데도 정작 소비자들은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 것이다. 고물가 여파로 과일을 ‘사치재’처럼 느끼는 인식이 굳어진 데다, 장기간 형성된 ‘과일은 비싸다’는 체감 가격이 쉽게 꺼지지 않고 있어서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 ‘농넷’에 따르면 올해 11월 10㎏ 기준 감귤 도매가격은 8218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 3962원보다 5744원(41.1%) 낮아졌다. 배 역시 같은 기간 3만 5120원에서 2만 3110원으로 34.2%나 가격이 떨어졌고, 포도는 4만 4360원에서 2만 7890원으로 37.1% 내려갔다. 한때 ‘과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며 품절 사태를 만든 샤인머스캣도 33.7%가량 가격이 빠졌다.
다만 사과만큼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11월 기준 사과 도매가격은 10㎏에 4만 58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4% 넘게 올랐다. 지난여름 5만 7000원을 넘나들던 ‘금사과’ 수준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가격 저항선이 존재한다.
이처럼 감귤·배·포도 등 주요 과일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은 겨울 과일 출하가 본격화되는 11월 특성과, 지난해 과도하게 높았던 가격의 기저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가격 하락이 곧바로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가락도매시장은 과일을 고르는 손님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일부 과일 매장만 문을 열었고, 대목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락시장에서 과일 매장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사과는 보관성이 좋아 바로 수요가 늘지 않고, 배는 명절 수요 의존도가 큰 편이며, 포도는 샤인머스캣 유행이 식으면서 예전만 못하다”며 “올해 과일이 맛도 좋고 가격도 많이 내려갔는데 소비가 그대로라 아쉽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소비 심리가 얼어붙어 과일 구매가 ‘후순위’로 밀린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서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와 올해 여름까지 과일 가격이 워낙 높아서 소비자들이 ‘과일은 비싸다’는 인식을 고착화하게 됐다”며 “크리스마스 전후로 도매가격이 소매가격에 반영되고, 겨울 제철 과일 수요가 늘면서 어느 정도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과일은 생필품보다는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품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쌀·밀 등 곡류가 구매 1순위, 고기·김치·야채 등이 2순위라면 과일은 3순위로 밀려 ‘사치재적 소비’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일은 사치재 성향이 있어 경기 상황에 따라 수요가 크게 요동친다”며 “내년 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품목은 단연 감귤이다. ‘국민 과일’이라는 별칭을 가진 감귤은 한국인이 겨울철 가장 많이 찾는 과일이자, 가격·접근성·영양 면에서 대중성이 탁월하다. 감귤은 과육이 부드럽고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먹기 쉬우며, 한 손에 쥐고 바로 까서 먹을 수 있어 ‘간편성’이 뛰어나다. 비타민 C가 풍부해 감기 예방에 효과적이고,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수요가 늘어나는 대표적인 계절 과일이다. 특히 11~1월 제주 감귤 출하량이 절정에 달하면서 맛이 가장 좋고 가격도 안정돼 ‘지금 먹어야 제철 가격’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기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더디다. 지난해 ‘금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던 경험이 남아 있고, 고물가 시대 장바구니 부담이 여전히 큰 탓이다. 상인들은 “이 정도 가격이면 예년이라면 이미 박스 단위로 나갔을 때인데 올해는 소비 자체가 차갑다”고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제철 과일 소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소비자 체감 물가가 실제 가격 하락을 따라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겨울철 수요 증가와 함께 소매가격이 안정화된다면 감귤을 비롯한 주요 과일 소비는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