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맛없다고 기름이나 짰는데...” 불과 10년 만에 겨울 '국민 횟감' 된 생선
2025-11-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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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철 생선의 맛있는 비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이 생선'이 겨울철이면 없어서 못 먹는 귀한 몸이 되었다.

한때는 동해안에서조차 여름에 잡히면 맛이 없어 외면당하고 심지어 기름을 짜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던 생선, 방어가 이제는 겨울철이면 전국 횟집 앞에 긴 줄을 세우는 주인공이 되었다. 방어는 어떻게 이 놀라운 역전극을 펼칠 수 있었을까?
◆ 천덕꾸러기 방어, '맛없는 생선'의 오명
방어는 예부터 우리나라에서 곧잘 잡히던 생선이었다. 세종실록에도 동해안의 특산물로 기록될 만큼 친숙했지만, 맛있는 생선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방어의 회유성 습성 때문이었다. 방어는 따뜻한 물을 찾아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데, 제철인 겨울에는 남쪽 제주도로 내려가지만, 옛 동해안에서 주로 잡히던 방어는 제철이 아닌 여름에 잡힌 것들이 많았다.

여름 방어는 산란을 마치고 지방이 다 빠져버려 육질이 푸석하고 맛이 없었다. 또한 과거 한국의 회 문화가 쫄깃한 식감을 선호하는 '활어회' 중심이었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러운 방어는 당시 한국인의 입맛에는 낯설었다. 이로 인해 방어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는 생선이었다.
◆ 참치와 연어가 길을 닦다: 숙성회에 눈뜬 한국인의 미각
방어가 인기 스타로 발돋움한 배경에는 참치와 연어라는 두 생선이 있다. 2000년대 참치 전문점이 대유행하면서 한국 소비자들은 진한 맛과 입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을 경험했다. 이는 기존의 쫄깃한 활어회와는 다소 생소한 식감이었지만, '고급스러운 맛'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숙성회에 대한 거부감을 처음으로 없애주었다.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연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입 연어가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풀리고 연어 무한리필점까지 생겨나면서, 청년층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진한 맛의 숙성회에 익숙해졌다. 참치와 연어가 차례로 대중의 입맛을 길들이면서, 방어는 자연스럽게 '맛있는 숙성 생선' 반열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이후 이자카야와 오마카세 열풍이 숙성회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대방어' 열풍과 해수온 상승의 아이러니

방어는 단순히 인기를 얻은 것을 넘어, '대방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대방어(보통 8kg 이상)는 일반 방어보다 지방이 풍부하여 참치처럼 다양한 특수 부위(배꼽살, 가맛살 등)를 세분화하여 맛볼 수 있는데 이 진한 감칠맛이 겨울 방어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겨울 방어의 최대 산지는 제주도였지만, 최근 해수온 상승으로 방어가 굳이 따뜻한 제주 남단까지 내려가지 않고 동해안에서도 충분히 월동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 모슬포의 방어 어획량이 줄고, 오히려 강원도 고성군 등 동해 최북단에서 더 많은 방어가 잡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했다.
다행히 방어는 난류성 어종이라 국내 어획량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2014년 140톤에 불과했던 수입량이 2023년에는 3,200톤으로 20배 이상 급증하며, 한때 수출 품목이던 방어가 이제는 대표적인 수입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방어는 겨울이 되면 피크 시즌 맛집 앞에 줄을 서게 만드는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 제대로 된 '대방어' 고르는 법

겨울 방어의 참맛은 풍부한 지방에서 나오므로, 크기가 클수록 맛있다. 흔히 8kg 이상을 대방어로 구분하며, 10kg이 넘으면 특대 방어로 분류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대방어 구매 시 다음 사항을 확인하면 더욱 맛있는 방어를 즐길 수 있다.
1. 크기 확인: 횟집에서 대방어회를 고를 때는 횟감으로 썰리기 전 고기의 크기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작은 방어를 대방어로 속여 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 눈과 아가미: 싱싱한 방어는 눈이 맑고 투명하며, 아가미 속이 선홍색을 띤다.
3. 육질의 색상: 대방어는 지방이 많아 배꼽살, 뱃살 등의 부위가 뽀얗고 밝은 분홍색을 띠며, 이는 높은 지방 함량을 증명한다.
방어는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 쫀득하고 기름진 살은 물론, 대가리는 구이나 조림으로, 신선한 내장은 데쳐서 수육으로도 먹는다. 특히 대방어는 뱃살, 등살, 가맛살, 배꼽살 등으로 부위를 세분화하여 참치처럼 즐기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동해안 지역에는 소금을 넉넉히 친 방어를 집으로 감싸 장기 보관하던 울진의 꺼치간, 울산의 실레기찜 등 방어를 활용한 다양한 향토 요리가 예부터 전해져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