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은정이가 누구야?”... 수면내시경 검사 마친 남자가 뺨 맞고 있네요

2025-11-1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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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내시경 헛소리, 대체 왜 하는 것일까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오빠, 은정이가 누구야? 응? 방금 뭐라고 했어?“

병원 마취회복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수면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마취에서 덜 깬 남편이 낯선 여자 이름을 불러댄 것이다.

황당한 상황을 목격한 한 네티즌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연이 펌글 형태로 클리앙 등 커뮤니티에 퍼지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원글 작성자는 "아버지 내시경 검사에 따라와 (검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취회복실 저쪽에서 방금 오싹한 대화가 들렸다"고 전했다.

글쓴이는 아내로 추정되는 여성이 "뭐라고? 정신 차려봐. 은정이가 누구야??"라고 추궁하자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횡설수설했다고 밝혔다.

작성자는 "남편이 마취 덜 풀려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 같은데 저분 지금 큰일 난 것 같다"라며 "뭔가 찰싹찰싹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뺨을 때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수면내시경 검사를 앞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헛소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어항 속 물고기가 익사하고 있다"며 오열했다는 사람, 의료진에게 "팁"이라며 주머니 돈을 털어줬다는 사람, 내시경 기구를 물어버린 사람까지 다양한 사례가 공유된다.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옆 사람들은 선명하게 목격하는 난처한 상황. 도대체 왜 벌어지는 걸까.

수면내시경이라는 표현과 달리 검사 시 사용하는 마취는 환자를 완전히 잠들게 하는 게 아니다. 정확한 의학 용어는 '의식하 진정요법'이다. 자가호흡이 가능하고 의식은 약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불안감과 공포감만 완화하는 수준으로 진정제를 투여한다. 술에 취해 기억이 사라진 상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수면내시경에 주로 사용되는 진정제는 미다졸람과 프로포폴 두 가지다. 미다졸람은 주사 후 1~2분 뒤 진정 효과가 나타나며 서서히 깨는 특징이 있다. 망각효과가 뛰어나 검사 중 일어난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프로포폴은 주사 후 단 몇 초 만에 진정 효과가 나타나고 빨리 깨는 특성을 보인다. 기분을 좋게 하는 행복감과 진정 효과가 미다졸람보다 강하다.

문제는 이들 약물이 본래 기능과 전혀 다른 작용을 하는 '역설 반응'이 일부 환자에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진정제를 투여했는데 오히려 심한 뒤척임, 헛소리, 과도한 움직임 등의 반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역설 반응의 유형은 사용하는 마취제에 따라 달라진다. 미다졸람의 경우 누군가가 말을 걸면 대답하는 식이고, 프로포폴의 경우 속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양상을 보인다.

앞서 소개한 커뮤니티 사연 속 남편이 낯선 여자 이름을 부른 것도 이런 역설 반응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뇌의 억제가 풀리며 평소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말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생생하게 들리는 이 곤란한 상황이 바로 수면내시경의 큰 부작용이다.

위스콘신 대학교의 줄리오 토노니 정신의학과 교수가 개발한 '통합 정보 이론'에 따르면, 마취 약물이 뇌의 정보 흐름을 억제해 부위별 연결을 끊어지게 하면 의식이 성립하지 않아 소멸된다. 그러나 마취에서 깨어나 의식이 되돌아오는 과정에서는 뇌의 각 부위가 완전히 통합되기 전에 일부만 활성화되면서 헛소리나 이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역설 반응의 위험인자로는 알코올의 과도한 섭취력, 분노조절장애, 편집증 같은 정신과적 문제 등이다. 진정내시경을 시행한 1~18세 소아청소년 대상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1.410%의 소아가 빈맥, 불안증, 울음, 지남력 저하 등의 역설 반응을 보였다. 소아의 경우 미다졸람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역설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용량 증량과 연관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한 종합병원 연구에 따르면 과거 미다졸람 역설 반응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미다졸람 투약량을 과거보다 2mg 이상 줄여 투약했더니 역설 반응이 크게 줄었다.

수면내시경을 받는 모든 사람이 헛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수진자는 조용히 수면만 취한다. 역설 반응으로 헛소리를 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마취제 종류, 의식 정도, 내시경 시간, 체중, 연령 등에 따라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의료진들도 이런 상황을 일상적으로 접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과거 역설 반응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의사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헛소리로 인한 부끄러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한 움직임으로 검사가 어려워질 수 있고, 자칫 낙상 사고까지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 반응이 발생했을 때는 벤조디아제핀 길항제인 플루마제닐을 투여할 수 있다. 플루마제닐은 미다졸람 같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 작용을 상쇄시키는 해독제 역할을 한다. 투여 후에도 진정 상태는 지속되고 기억상실 효과도 유지된다. 하지만 프로포폴의 경우 회복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내시경 검사는 조기 위암과 대장암 진단에 필수적인 검사다. 헛소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검사를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사 중 특이한 말이나 행동을 했다 해도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고, 의료진도 일상적으로 접하는 상황이라 문제 삼지 않는다. 역설 반응은 극소수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적절한 용량 조절과 모니터링을 통해 안전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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