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거 아니야?” 소고기 구울 때 나오는 붉은 물, 피인 줄 알았는데…
2025-11-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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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고 흔히 오해하는 붉은 액체의 정체는?
소고기를 구울 때나 스테이크를 썰 때 접시에 고이는 붉은 액체를 보며 많은 이들이 "아직 덜 익어서 피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디엄 레어(Medium Rare)처럼 속이 붉은 상태의 고기를 접할 때 이러한 오해는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흔히 '피'라고 오해하는 이 붉은 액체는 사실 피가 아니다.

붉은 물의 진짜 정체는 '마이오글로빈'이 섞인 육즙이다. 소고기를 붉게 물들이는 이 액체의 주인공은 바로 마이오글로빈(Myoglobin)이라는 단백질이다.
◆ 마이오글로빈이란?
마이오글로빈은 근육 세포 내에 존재하며 산소와 결합하여 저장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이 산소와 만나면 붉은색을 띠게 된다. 소고기는 활동량이 많은 동물의 근육이며, 산소를 많이 저장해야 하므로 마이오글로빈 함량이 돼지고기나 닭고기보다 훨씬 높아 붉은색을 띠는 것이다.
소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혈액(피)은 이미 제거된다. 따라서 고기 내부에 남아있는 붉은 액체는 혈관을 따라 흐르는 혈액(Blood)이 아니라, 근육 세포 내에 머물러 있던 마이오글로빈이 고기의 수분(물)과 함께 빠져나온 것이다. 스테이크 접시에 고이는 붉은 액체는 90% 이상의 수분과 나머지 마이오글로빈, 용해성 단백질, 미네랄 등이 섞인 육즙이다.
◆ 열을 가하면 색이 변하는 이유

소고기에 열을 가했을 때 붉은색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마이오글로빈의 변성(Denaturation) 때문이다. 마이오글로빈은 섭씨 60도 이상의 온도에 노출되면 구조가 변형되며 갈색(회갈색)으로 변한다. 즉, 붉은색이 사라졌다는 것은 마이오글로빈이 충분히 익어 변성되었다는 신호이다.
◆ 굽기 전 '실온 레스팅'은 필수다.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소고기를 바로 뜨거운 팬에 올리면, 표면은 빠르게 익지만 내부 온도가 올라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과정에서 고기 조직이 수축하며 육즙이 과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고기를 굽기 최소 30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 실온에 두어 내부 온도를 올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고기가 팬 위에서 균일하게 익어 육즙 손실을 줄일 수 있다.
◆ 시어링(Searing)은 가장 센 불로 시작한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팬을 충분히 달군 후 가장 센 불에서 고기의 겉면을 빠르게 구워 바삭한 갈색 막(마이야르 반응)을 형성해야 한다.

먼저 올리브 오일이나 발연점이 높은 기름을 두르고 연기가 나기 직전까지 팬을 달군다. 고기를 올리고 한 면당 1~2분씩(두께에 따라 다름) 센 불에서 빠르게 굽는다.
이렇게 굽게 되면 코팅이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을 일차적으로 막아주며, 고기 표면의 풍미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후 불을 줄여 원하는 굽기로 내부 온도를 맞춘다.
◆ 풍미를 더하는 허브와 버터를 활용한다.
센 불에서 시어링을 마친 후에는 불을 중불이나 중약불로 낮춘다. 이때 버터 한 조각과 통마늘, 타임(Thyme) 또는 로즈마리 같은 허브를 팬에 넣고 녹인 후, 녹은 버터를 숟가락으로 고기 위에 계속 끼얹어 가며 굽는다(아로제, Arroser). 이렇게 하면 고기에 허브와 버터의 풍미가 깊게 배게 된다.
◆ 굽고 난 후에도 '레스팅'을 취해야 한다.

고기를 구운 직후에는 근육 섬유가 수축한 상태이며, 육즙이 중앙에 몰려 있다. 이때 바로 썰면 붉은 육즙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고기가 퍽퍽해진다. 고기를 굽고 팬에서 꺼낸 후, 호일이나 접시 위에 올려 5~10분 정도 휴식(Resting)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 시간 동안 수축했던 근육 섬유가 이완되며 육즙이 고기 전체로 고르게 재분배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 고기의 촉촉함이 극대화된다.
결론적으로 소고기에서 나오는 붉은 물의 정체는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은 마이오글로빈이 포함된 육즙이다. 레스팅 및 굽기 팁을 활용한다면, 육즙 가득하고 풍미 넘치는 완벽한 소고기 요리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