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고등학생, 길에서 쓰러졌는데 '배후진료' 되는 병원 없어 사망
2025-11-18 17:37
add remove print link
15분의 지연, 한 생명을 앗아간 응급의료 시스템의 한계
부산의 한 고등학생이 길에서 쓰러진 뒤 병원 이송 과정에서 지체를 겪고 결국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달 20일 새벽, A고등학교 인근에서 B군이 쓰러진 것을 목격한 시민이 119에 신고했고, 출동한 구급대는 약 1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B군은 팔다리에 경련을 보이며 발버둥쳤고, 이름을 부르면 반응할 정도로 의식은 있었지만 상태가 불안정했다. 구급대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을 시도했으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했다.
소아신경과 응급치료와 이후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없다는 이유로 인근 대형병원 여러 곳에서 환자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구급대는 부산소방재난본부 구급상황관리센터와 협력해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 부산 내 대형병원과 경남 창원 지역까지 문의했지만, 배후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B군은 의식을 잃고 심정지 상태에 이르렀으며, 구급대원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가장 가까운 C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침 7시35분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생명을 되돌리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이번 사건은 한국 응급의료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응급환자가 병원 간 ‘뺑뺑이’를 돌며 치료가 늦어지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소아와 청소년 환자, 신경계 질환 환자 등 전문 진료가 필요한 경우, 배후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제한적이어서 구급대가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반복된다.
대한응급의학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응급실의 30% 이상이 중증 소아환자 수용에 제한을 두고 있으며, 특히 야간이나 주말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정부는 지난 2023년부터 ‘심정지 발생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응급의료기관은 반드시 환자를 수용한다’는 지침을 발표하고, 응급환자 전용 이송체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과 정책 간 괴리가 여전히 크다. 일부 병원은 전문 의료진과 장비 부족, 과밀한 환자 수용 문제를 이유로 구급대 요청을 거절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번 사례에서도 구급대는 부산 내 병원에서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경남 창원까지 범위를 넓혔지만, 결국 배후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의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안타까운 사고로 끝나지 않고, 한국 응급의료 체계 전반의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응급환자가 병원 사이를 돌며 치료가 늦어지는 상황은 심정지나 중증 질환의 경우 치명적이며, 특히 어린 환자의 경우 1분 1초가 생명을 가르는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병원과 구급대 간 실시간 연계 시스템을 강화하고, 응급 소아환자 전담 병원 확보와 의료진 인력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응급실과 구급대원 간 ‘전용회선(핫라인)’ 설치를 의무화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261명 중 찬성 260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된 이번 법안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는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 사례로, 의료계와 국민 모두의 관심사였다.
개정안의 핵심은 응급실과 구급대원 간 전용 통신망을 개설·운영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구급대원은 실시간으로 각 병원의 응급환자 수용 능력을 확인할 수 있고, 환자가 신속하게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다.
다만, 법안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병원과 구급대원의 체계적인 협조, 전용회선과 응급의료정보통신망의 안정적 운영, 정기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수적이다. 또한, 재정 지원 기준과 범위, 긴급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 체계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 배후진료란?
배후진료는 단순히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응급처치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환자가 필요로 하는 전문적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연결해 주는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아환자나 신경계 질환 환자는 응급처치 후에도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배후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제한적이고, 야간이나 주말에는 찾기 어려워 응급환자가 병원 간 ‘뺑뺑이’를 돌며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응급처치와 배후진료가 원활히 연결되어야 환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도 이에 맞춰 응급환자 전용 이송체계와 병원 간 연계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